⑫ 1904년 옥중 집필 ‘독립정신’

옥중 이승만 마지막 순 한글 원고
박용만·문양목, ‘후서’로 출판경위 설명
‘총론’과 ‘후록’ 포함 전체 52개 소주제
문화재급 ‘한국학 및 사회과학’ 개론서
이영훈, 이승만은 실학과 대한민국 연결
초판 출판은 1910년 LA ‘대동신서관’

류석춘
류석춘

1904년 27일 일본 해군이 제물포 앞바다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해군을 공격했다. 러일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29살 이승만은 옥중에서 들었다. 이 전쟁이 끝나면 승자가 누구이건 그 승자가 대한(조선)을 지배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내다 본 이승만은 마음이 바빴다.

옥중에서 편찬 중이던 영한사전일을 팽개치고, 나라의 독립을 보전하는 방안을 담은 책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4달 만에 끝낸 원고가 실제 책으로 출판된 건 이승만이 출옥해 미국으로 건너가 유학을 마칠 즈음인 19102월이었다. 옥중에서 원고를 마친지 6년 후다. 출판사는 미국 LA 에 있던 대동신서관이었다. 물론 순 한글 책이었다.

출판된 책 서문에서 이승만은 이 원고를 쓴 과정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일아전쟁(일러전쟁)이 벌어졌다...슬프고 분통한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동안 만들던 한영자전 간행 작업을 정지하고 양력 219일부터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한 장의 종이에 장서를 기록하여 몇 만 장을 발간하려 하였으나 급기야 시작하고 보니 끊을 수 없는 말이 연속되는지라 마지못해 관계있는 사건들을 대강대강 기록하였다.” (이승만, 1910, 독립정신f1). 서문 말미에 죄수 이승만의 원고 마무리는 1904629일이라 밝히고 있다.

이승만이 1910년 LA에서 출판한 '독립정신' 초판본 표지 (왼쪽) 및 김한교가 편역해 2000년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출판한 영문판 독립정신 The Spirit of Independence 표지 (오른쪽). 두 책 표지의 ‘독립정신’ 글씨는 모두 이승만의 친필이다.

이승만은 출판된 책 본문 중 마음속에 독립을 갖게 함이라는 소제목 하의 글에서 원고 작성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지금 우리나라에 독립이 있다 없다 함은 외국이 침범함을 두려워 함도 아니요, 정부에서 보호하지 못함을 염려함도 아니요, 다만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 두 글자가 있지 아니함이 참 걱정이라” (이승만 독립정신p. 23). 국민의 마음속에 독립이란 생각이 있는 한 독립을 지킬 수 있다는 이승만의 마음이 처연하다.

출판된 책의 분량은 본문만 295쪽에 달했다. 이 본문에 더해 이승만 본인의 서문’ 2, 그리고 박용만 및 문양목이 쓴 후서’(後書) 3쪽에 목차 4, 합해서 모두 12쪽이 책의 앞부분에 추가로 등장한다. 참고로, 후서는 이름만 후서라 붙였을 뿐 실제로는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전서(前書)이며 출판의 경위를 설명한 글이다. 이외에도 책에는 페이지 번호가 붙지 않은 사진, 도표, 그림이 111 개나 추가되어 있다.

지금의 책으로 쳐도 이 책은 결코 짧은 분량이 아니다. 요즈음 문장으로 다듬어 재출간된 독립정신책 분량을 살펴보자.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원장 김명섭)이 연세대 출판문화원에서 2019년 출간한 독립정신474 쪽이다. 박기봉이 2017년 비봉출판사에서 출간한 독립정신464 쪽이다.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의 책 원고를 이승만은 옥중에서 불과 4개월 만에 완성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1910년 '독립정신' 초판본에 실린 이승만 사진. '본 책 저술할 때 본 저술가 이승만 본 형태'라고 쓰여 있다.
1910년 '독립정신' 초판본에 실린 이승만 사진. '본 책 저술할 때 본 저술가 이승만 본 형태'라고 쓰여 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승만은 감옥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동북아 정세를 분석한 청일전기원고를 제일 먼저 썼다. 그리고 나선 신학월보제국신문에 엄청난 분량의 논설을 기고했다. ‘제국신문에만 19011월부터 19034월까지 무려 500여 편의 옥중논설을 썼다. 물론 감옥에 들어오기 전 협성회회보’ ‘매일신문’ ‘제국신문에 썼던 원고도 있었다.

러일전쟁의 발발을 지켜본 이승만은 독립의 정신을 백성들 사이에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4개월 동안 집중적인 작업을 했다. 기존의 원고들을 재활용 및 재구성하고 추가로 필요한 글은 새로 덧붙였다. 이렇게 독립정신원고가 완성되었다.

독립정신본문은 총론후록을 포함해 전체 52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총론이후 후록이 나오기까지 중간에는 각각 자기 책망(책무)을 깨달음으로 시작해 일본 백성의 주의로 끝나는 50개의 소주제가 이어진다. 후록에는 독립주의의 긴요한 6대 조목이 압축되어 있다. 여기에서 각각의 소주제별 내용을 일일이 소개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잠시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책에는 1) 독립과 자유에 관한 인간의 본성, 2) 독립과 자유는 곧 통상이며 문명·개화는 필연, 3) 야만과 개화 그리고 세 유형의 정치체제 (전제정치, 대통령제, 내각제), 4) 폐쇄경제의 운명과 전제정치의 해독에 따른 마음의 결박 8가지, 5) 동아시아 근세사를 통해 본 망국의 정치외교사, 6) 마지막 처방인 교화 등과 같은 큰 주제의 논의가 차례로 등장한다 (이영훈, 2020,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자미래사).

이승만학당교장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이승만은 실학의 계보를 잇는 마지막 사람이었다...실학의 맥락은...이승만을 매개로 대한민국 역사로 계승되었다. 우리의 대학사회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깡그리 무시했다....그들은 이승만이 독립정신에서 피력한 인간 본성으로서의 자유, 문명·개화의 논리와 필연, 자유의 통상·정치·외교, 망국에 이른 정치사를 전 체계로 이해하고 평가할 지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이영훈, 2020,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읽자14).

그렇다.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 없이 오늘날 대한민국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책은 망해가는 구한말과 오늘날 번영하는 대한민국이 그 사이 등장한 수많은 단절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이라는 선각 지식인을 통해 사상적으로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당연히 대한민국 최고의 문화재급 대우를 받아야 할 책이다. 이런 역사 해석이 자리를 잡아야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설 터이다.

독립정신재판은 1917년 하와이 태평양잡지사에서 찍었다. 일제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이 책은 해방이 되고 나서 1946(국민정신진흥회 및 활문사), 1947년 및 1953(중앙문화협회), 1954(태평양출판사) 간헐적으로 중간이 이어지다가, 19604·19 이후 다시 금서 취급을 받으며 사라졌다.

세월이 지나 1993년 이한빈이 다듬어 정동출판사가 다시 출판을 했고, 1998년 연세대 현대한국학연구소가 이화장소장 우남이승만문서 동문편18권 중 제1권에 초판 영인본을 수록했다. 그 후 2008년 김충남·김효선이 풀어쓴 독립정신(청미디어) 그리고 같은 이들이 다시 더 쉽고 간략히 정리해서 2010독립정신: 조선민족이여 깨어나라(동서문화사) 로 출판했다.

그러나 전체 내용을 완전히 제대로 복원한 책은 2018년 박기봉이 교주(校註)독립정신(비봉출판사) 그리고 2019년 연세대 출판문화원이 출판한 독립정신뿐이다. 연세대는 독립정신 영인본도 함께 출판했다. 한편, 영문판은 2000년 김한교 교수가 번역해 하와이대학 출판부에서 나왔다.

이 책의 원고를 마친 후 두 달만인 190489일 이승만은 민영환·한규설 등의 노력으로 특별사면을 얻어 감옥에서 나왔다. 57개월 만의 출옥이었다. 출옥 3개월 후인 114일 이승만은 미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