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1960~1989)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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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에 ‘찬밥처럼 담겨’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는 한 소년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날은 저물고 비마저 내려 꾹 참았던 두려움은 마침내 터져버린다. 소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우는 것뿐. 울기를 그치면 두려움이 엄습하고 다시 울면 두려움은 한 발짝 물러난다. 어둠이 집을 덮치고 ‘배추잎 같은 발소리를 타박타박’ 내며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소년은 그렇게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린다. 울음을 통해 두려움을 이기며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카타르시스를 어렴풋이 체험한다. 카타르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을 논하며 관객에 미치는 작용을 말한 것이지만, 울음은 모든 사람을 정화시킨다.

이처럼 시작(詩作)의 출발점은 지워지지 않는 유년의 기억이다. 단순한 인식, 기억이 아니라 체화로서의 기억이다. 체화란 몸의 기억으로, 감각의 기억이라 해도 무방하겠다. 문학, 특히 시문학은 이성의 언어가 아닌 감각의 언어 즉, 몸의 언어로 구성된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일찍이 몸의 언어를 정의한 바 있는데,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번민은 결국 몸 안에서 일어난다.

제목이 ‘엄마 걱정’이지만 실은 화자 자신을 향한 애착이다. 보통 시인은 엄마를 대상으로 시를 쓸 때 그리움의 언어를 구사하는데, 기형도 시인만은 예외였다. 그의 시가 특별한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가운데 유년의 기억이 유독 많은 까닭은, 의도했건 안 했건 스스로 심리치료를 시도하지 않았나 싶다. 예술치료란 심리학과 예술이 결합된 것으로, 글·그림·노래·춤 등을 통해 무의식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제거하여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시인의 부친은 황해도 출신으로 월남한 뒤 인천을 거쳐 광명시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가 10살 때 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16살 때는 두 살 터울이었던 누이마저 사고로 잃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던 중 심야극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그를 처음 발견한 극장 관계자는 텅 빈 극장에 홀로 앉아 있었고, 소주 한 병을 쥐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시 ‘빈집’을 보며 그의 죽음을 상념해볼 수도 있겠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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