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요즘 청계천을 알뜰히 맛보며 산다. 그윽한 감칠맛이 있다. 청계천변 숙소에서 광화문까지 물길을 15-20분 쭉 거슬러 도보로 출퇴근하는데, 출근길은 산보요 퇴근길은 휴식, 딱 그런 기분이다. 이른 아침이면 조깅하는 주민들과 청동오리 백로를 만난다. 내일은 무슨 새를 만날까 설레기까지 한다. 저녁엔 연인들 가족들 친구들 등 다양한 일행들로 붐빈다. 배워서 알고 사진으로 기억할 뿐이지만, 이 물길을 땅 아래 가둬 놨던 시절 얘기가 꿈결 같다. 사람과 자연이 싸우던 곳, 지금은 함께 숨쉬는 공간이다. 이 나라의 반세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청계청에서 맛보는 것은 ‘자유의 맛’ 아닐까 싶다. 도심 한복판에서 여성이 혼자 밤길을 걷을 수 있는 나라가 드물다고 들었다. 한번은 회식을 늦게까지 즐긴 후 자정 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해장이 당겼다. 당장 길가 24시간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샀고 인적 끊긴 청계천 바로 옆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먹었다. 혀끝의 만족감, 총체적 해방감에 극도로 행복했다. 취식이 금지된 행위임은 술 깨고 확실히 알았다. 또 해보긴 어려우니 이제 ‘청계천의 추억’이다. 취중에도 흔적을 완벽하게 처리할 줄 아는 최소한의 예의에 주어진 작은 행운, 그리 생각하기로 했다.

숙소를 구하는 과정 또한 ‘자유의 맛’이었다. 인터넷을 뒤지니 금방 나왔다. 누구를 귀찮게 할 것도, 발 품을 팔 필요도 없었다. 1인용 작은 공간이지만 청결하고 쾌적하다. 온수 난방 등 설비도 좋고 월세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몇번의 해외생활에선 겪어보지 못한 바라 그런지 신선하고 반가웠다. 아울러 이런 ‘자유의 맛’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기본적으로 이 나라가 자유민주공화국인 덕분이고,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꾸준히 성장시킨 결과다. 그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 애써 지켜야 하는 가치임을 요 몇 년 실감하고 있다. 

서울로 대학을 진학해 수도권 주민이 된 지 수십년이지만 나는 청계천을 처음 본다. 광화문 종로에 한번 나오는 게 큰 외출이었던 생활양식 때문만은 아니다. 토건족 출신 정치인의 무리한 업적쌓기로 바라보는 삐딱한 시각이 있었다. 요즘 청계천을 오가며 감사함 뿌듯함과 함께 살짝 부채감을 느끼는 이유다. "대책 없는 청계천 복원사업" "고사(枯死)하는 도시 빈민들" 등등 얼마나 반대가 거셌던가.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를 연상시킨다. 물론 원치 않는 철거를 당하고 손해 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 상태를 유지해야 했을까?

개발을 혐오하며 농촌공동체형 ‘우리끼리’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권력을 맡겼을 때 어찌되는지 잘 알게 됐다. 서울은 도심에서 텃밭 가꾸고 양봉을 하기보단 부가가치를 키워 세계 명소가 되는 게 맞다. 세계인들이 와 보길 원하며, 와서 기꺼이 돈을 쓰고 싶은 도시 말이다. 서울에 더 필요한 것은 고급 주거공간, 멋진 공원, 세계적 수준의 크고 작은 공연장·전시장·레저시설이다.

빼곡한 빌딩 숲 사이로 흐르는 ‘맑은 내(淸溪)’가 도심의 귀한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물소리를 들으며 한국근대문학 걸작의 하나, 박태원의 장편소설 ‘천변풍경’(1938년)을 떠올린다. 소설은 청계천 빨래터에서 시끌벅적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문득 그 시절로 타임슬립 한 착각에 빠질 때면 광화문 차소리도 아련한 속삭임처럼 들린다. 정치인의 업적쌓기엔 여러 유형이 있다. ‘시민을 위해서’라며 결과는 범죄인 경우, ‘정의’와 ‘선의’를 강조하던 시도가 알고 보니 적폐였고, 탐욕의 실현으로 보였던 사업은 깜짝 선물이 돼 있기도 한다. 삶과 역사에 대한 보다 성숙한 관점을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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