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재취 간 엄마 찾아간 철없는 딸처럼, 시누이 몰래 지전 쥐어주고 콧물 닦아주는 어미처럼
나와서는 안 되는 대낮에
물끄러미 떠 있다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 밝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 떠 있다
화장 지워진 채, 마스카라가 번진 채
여우비 그친 하늘에
성긴 눈썹처럼, 종일 달인 국솥에
삐죽이 솟은 흰 뼈처럼

장옥관(1955~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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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하고 나직이 읊조리면 떠오르는 가사가 있다.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꼬부랑 할머니가 물 길러 갈 때 치마끈에 달랑달랑 채워 줬으면…. 윤석중 작사 홍난파 작곡의 동요다. 그렇듯 낮달은 동심을 자극하면서 계절을 가리지 않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문득 문득 나타난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낮달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괜스레 상념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래서 낮달은 예술작품의 단골 오브제로 등장한다.

그런데 장옥관 시인의 ‘낮달’은 동심의 세계와 거리가 멀다. 그것은 숨겨져야 할 것,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의 은유다. 하지만 그것은 감추고 싶지만 감춰지지 않는 것이고, 가리고 싶지만 가려지지 않는 것이고, 조용히 숨어있고 싶지만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파란색 바탕의 하얀 낮달, 그것은 잊히지 않는 오랜 기억처럼 희미하면서 선명하다.

재취 간 엄마에게 어린 딸의 존재는 ‘떠올라서는 안 되는 얼굴’이고 ‘밝아서 보이지 않는 얼굴’이고 ‘있어도 없는 듯 지워져야 할 얼굴’이다. 그렇긴 하지만 천륜은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끓을 수도, 지울 수도 없다. 낮에 나온 달은 ‘재취 간 엄마 찾아간’ 천륜을 맞닥뜨린 엄마의 당황스러움이다. 엄마는 누가 볼세라 사방을 살핀다. 놀랍고 당황스러운 한편 눈물겹게 반갑지만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재빨리 ‘철없는 딸’을 치마폭에 숨긴 뒤 사람들 눈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간다. 거기서 지전(紙錢)을 손에 쥐어주고 콧물도 닦아준다. ‘철없는 딸’을 돌려보낸 엄마는 ‘화장이 지워지고, 마스카라가 번지도록’ 운명의 서러움에 몸 안의 물기가 ‘종일 달인 국솥’처럼 졸아들 때까지 울고, 서러움은 ‘삐죽이 솟은 흰 뼈처럼’ 한(恨)으로 남는다. 장옥관 시인의 ‘낮달’은 서럽고 한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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