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
(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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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이 저성장의 원인? 그 반대가 맞다

자유일보는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18년 2월 기파랑 출판)⟫을 연재합니다. 자유일보 애독자들에게 대한민국 경제의 본질적 고질적 병폐인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저성장과 양극화의 원인;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성장의 장기 정체와 불평등 심화 현상에 대한 학계의 주류 생각은, 저성장 추세는 저출산 고령화가 원인이며, 양극화는 특히 선진국의 경우 세계화와 신흥공업국들의 부상에 따른 경쟁의 심화와 IT화 등 기술혁신에 따른 기술 양극화로 저기술, 저임 근로계층의 부적응과 탈락에 따른 중산층 축소 등이 원인이라 주장하고 있다(Acemoglu and Autor, 2011 등 참조). 다시 말해 세계화에 따른 경쟁 격화와 기술혁신 등에 부응하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조정 지연이 양극화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주장들은 필자의 눈에는 문제의 원인을 설명한다(explain)기보다 문제의 상황을 그냥 기술(describe)하는 것에 불과하여 해법을 찾는 데 크게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내생변수를 내생변수로 설명하는 꼴이니, 그냥 동어반복의 토톨로지(tautology)가 되고 진짜 외생적 원인변수를 찾는 데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2017년 출생아 역대 최저. 연합뉴스
2017년 출생아 역대 최저. 연합뉴스

1. 저출산이 저성장의 원인? - 그 반대가 맞다

우선 저출산(과 그에 따른 고령화) 문제를 생각해 보자. 신고전파(Neoclassical) 성장론에서는 단순화된 모형의 경우는 인구증가율이 외생변수로서 성장률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적 자본이 더 적절한 설명변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적 자본은 근로자 수와 그들이 체화한 지식(질)의 곱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저출산으로 근로자수가 줄어들거나 정체된다고 하더라도 지식의 양이 증가하면 인적자본의 크기는 오히려 증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여기서 저출산을 외생변수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출산율이야말로 내생변수가 아닌가. 왜 출산율이 떨어지는가? 자녀를 낳고 키우는 기회비용이 증가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가임 여성들의 경제 참여가 늘어 자녀를 낳고 키우는 기회비용이 너무 높아지면서 가정경제학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자녀의 숫자는 줄이고 그 질을 더 선호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그럼 왜 여성의 경제 참여가 늘었는가? 그동안 경제학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경제의 관점에서는 비생산적이니 보다 많은 여성들이 직업전선에 나가야 선진국이 된다고 주장해 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양성평등 이념에도 맞는다고 적극 장려한 것이 아니던가. 여성들로 하여금 자녀를 안 낳는 것이 더 좋다고 우리 모두가 장려해 온 결과가 바로 저출산 아닌가. 이런 외생적 원인인 반(反) 출산의 이념이 안 바뀌는 한, 돈을 아무리 쓴들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겠는가. 어머니의 역할이 인류의 생존에 절대적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제일 생산적이고 존경받는 일임을 다시 가르치는 일부터 시작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문제는 이런 가정(家庭) 안에서의 한계적 선택과 동시에, 가계주를 포함한 가계 전체의 소득수준과 안정적 직장에 대한 비전의 악화로 인한 코너 해(corner solution), 즉 강요된 선택의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저출산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가임기의 청년세대들의 안정적인 소득원인 직장이 온전치 못한 까닭이라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만혼(晩婚)이 일반화되고 자녀수 또한 소수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럼 그 원인은 무엇인가? 바로 저성장에 따른 좋은 일자리 부족이 그 근본 원인이다. 저출산이 저성장의 원인이라 했는데, 실상은 거꾸로 저성장에 따른 소득원 상실이 저출산의 원인인 것이다.

한편, 소득증대에 따라 저출산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자녀의 질 문제를 고려하면 저출산 자체가 큰 문제일 수도 없는 일이다. 전후(戰後) 지난 60여 년의 역사는 바로 인적 자원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교육수준의 확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시기가 아니었던가. 이제 전 세계 선진국들에서는 대부분의 인간이 대졸자가 되는 세상이 도래할지도 모를 정도로 교육 기회와 수준이 확대되지 않았는가. 그럼 교육수준의 향상이 얼마든지 인구 감소 혹은 정체를 상쇄하여 인적 자본을 유지, 확충할 수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이런 시각에서 보면 진짜 문제는 저출산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막는 저성장을 야기하는 정책과, 교육의 양적 확대를 못 따라가는 질적 수준의 하락에 있다고 봐야 옳은 것이다.

자녀의 수가 기펜재(Giffen’s goods, 貧者財)이고 질은 사치재(luxury goods)라는 가정경제학 가설을 따른다면, 소득수준의 증가에 따른 자녀 수의 감소 효과는 자녀의 질, 즉 교육수준에 대한 수요증가로 어느 정도 서로 상쇄되리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성장률을 경정하는 인적 자본의 증가 여부는 교육의 양적 확대에 부응하여 그 질이 얼마나 증가했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게 될 것이다. 본문의 주장은 인구증가율이나 인구의 감소를 상쇄할 만큼 교육의 질이 향상되지 못한 것이 전체 인적 자원의 성장 기여를 낮춘 원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저성장의 원인은-다음 제2, 3장에서 체계적, 논리적으로 논술하게 되겠지만-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차단하는 정부의 평등주의 정책 패러다임에 있고, 교육의 질 저하 또한 교육의 수월성(秀越性)을 포기한 평등주의적 교육정책 패러다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경제사회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추구한다면, 즉 노력과 성과에 크게 관계없이 소득, 즉 보상도 같아야 하고 교육 기회도 같도록 해 줘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이념이 보편화되고 정책화되면, 노력과 성취, 성장의 유인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경제, 사회 모든 부문에서 성장의 유인이 사라진 경제는 전 사회의 역동성 하락과 저성장을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수긍이 안 되면 아름다운 평등의 이상을 내걸었던 사회주의가 왜 망했는지 회고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 노조 결의대회. 연합뉴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철회 노조 결의대회. 연합뉴스

2. 기술혁신이 소득 양극화의 원인? - 동어반복 주장

다음으로 세계화, 신흥공업국의 추격, 기술혁신에 구조조정이 못 따라가기 때문에 소득 양극화가 생긴다는 주장을 살펴보면, 이 또한 전형적인 동어반복을 못 벗어난 주장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 주장이야말로 바로 자본주의 경제의 최대의 장점이라는 ‘경쟁의 확대’와 ‘기술의 혁신’을 바로 양극화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모순론을 지지 강화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던져야 할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바로, 그럼 왜 선진국들은 구조조정의 유연성을 잃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답은 명백히,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제도적, 정책적 장애 때문이 아닌가.

그럼 이런 구조조정 장애 요인이 발생하게 된 근본 배경원인은 무엇인가? 필자는 결국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와 저소득계층을 보호해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자본주의 불평등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평등주의적 경제, 사회정책 이념이 궁극적인 배경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념을 배경으로 노조라는 사회적 제도가 만들어지고, 노조의 정치·사회적 힘을 바탕으로 하여 고착된 생산성을 넘는 고임금 구조가 바로 신흥공업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게 된 요인이 아니던가. 개방과 기술혁신에 따른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의 중심에 노조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보면 마르크스의 이념을 실천하겠다는 사회민주주의 경제평등 이념이 바로 구조조정 지연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조는 자본주의 경제의 태생적 본질이라기보다는 사회주의 이념의 사생아라 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왜 새로운 변화에 자조(自助)적으로 적극 대응하지 못하고 정치와 법의 힘을 빌리고 복지의 보호를 받고자 안주하는 국민들이 만들어 지는 것인가? 바로 민주정치를 통해 경제평등을 실현하겠다는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포퓰리즘 정책들을 양산하고 정치, 경제, 사회 곳곳에 구조조정을 막는 장애물들을 높게 쌓아 왔기 때문인 것이다. 불평등 심화 문제의 근본 원인은 그래서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바로 정치적 평등을 넘어 경제적 평등을 지상과제로 추구해 온 평등민주주의인 사회민주주의에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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