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부 의리와 한국 스포츠의 이모저모
태권도부 의리와 한국 스포츠의 이모저모
  • 최성재
  • 승인 2018.03.09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대체로 마음이 순수하고 정의감이 강하고 은원관계가 분명하지만, 한국의 운동선수들은 국민의 이중 잣대로 마음고생이 심하다.]

관악고 태권도부. 태권도신문
관악고 태권도부. 태권도신문

[최성재 문화교육 평론가]

서울의 공립고등학교는 교장의 역량 덕분에 또는 나약함 때문에 체육 특기생을 받는다. 힘센 또는 착한 교장이 떠나면, 운동부는 흐지부지 해체되기 일쑤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 중에서는 신목고와 관악고와 등촌고가 각각 양궁부, 태권도부, 배드민턴부 덕분에 어깨를 으쓱했지만, 그중에 관악고의 태권도부만 지금도 건재할 뿐, 나머지 둘은 이내 공중 분해되었다.

다행이랄까, 신목고는 목동 얼음경기장과 지리적으로 근접해서 그런지, 내가 전근 간 후 쇼트트랙부가 신설되어 지금도 우수한 선수들을 줄줄이 배출하고 있다.

신목고 양궁부는 내가 떠나기 1년 전에 신설되었다. 장소가 마땅찮아 교문 옆의 협소한 곳에 서 궁사들이 목동 유수지 쪽에 마련된 과녁을 향해 힘껏 화살을 쏘았다. 출퇴근길에 선생님들과 눈이 마주치면, 그때마다 웅장한 활을 내리고 정중히 인사하던 주몽의 후예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화려한 활이 너무도 탐스러워 한 번 어루만져도 보고 들어도 보고 시위 당기는 시늉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들의 싹싹한 인사성에 감격하여, 차마 또 시간을 빼앗을 수 없어서 아니 보는 척 곁눈질하며 눈에 안 띌 정도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곤 했다.

관악고 태권도부 제12회 제주평화기 전국태권도 대회에서 여자고등부 준우승. 태권도신문
관악고 태권도부 제12회 제주평화기 전국태권도 대회에서 여자고등부 준우승. 태권도신문

담임으로서 운동부 학생을 만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관악고 태권도부 7명이었다. 여담으로, 관악고는 관악구에 있지 않고 영등포구에 있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첫 해에 서울의 9대 공립고로서 개교할 당시에는 지금의 영등포구만이 아니라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도 모두 영등포구에 편입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관악산이 당시에는 영등포구의 앞산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들과도 일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면담했다. 단 그들은 시간도 빡빡하고 여느 운동선수들처럼 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게 뻔해서 7명을 한꺼번에 불렀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들의 집이 서울 전역에 걸쳐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늘 6시 30분에서 6시 40분 사이에 교문을 통과했는데, 체육관을 보면 언제나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거기서 ‘태권!’이란 함성이 힘차게 흘러나왔다. 쟤네들은 대체 몇 시에 올까?

“몇 시에 등교하니?”

“6시요.”

짧아야 등교 시간이 한 시간인데! 내 옷깃이 절로 여며졌다. 내 말이 절로 나긋나긋해졌다.

그 무렵에는 이미 체육 특기생들이 학과 공부는 않고 운동만 하는 것에 대해 쑥덕공론이 난무했다. 그해는 수능에서 9등급(하위 전국 4%)이 한 영역이라도 나오면(이승엽 선수 시절에는 400점 만점에서 5지선다의 확률 점수인 80점 이하), 체육 특기생도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 반의 한 학생은 전남의 모 지방대에 내정이 되었지만, 내려갈 수가 없었다.

사립고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서울의 공립고는 그 무렵부터 의무적으로 오전에는 꼼짝없이 학과수업을 받아야 했다. 어떻게 했을까? 꿀잠 시간! 나는 면담하면서 이들을 나무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점심 식사 후 이들은 바로 연습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비지땀을 흘렸다. 집에 가도 서너 시간을 잘까 말까, 그들은 교실에 들어가는 순간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어쨌건 교사든 학생이든 그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고울 리 없었다. 남남!

한국의 예체능은 특이하다. 대학 간판용으로 너무 많이 이용된다. 외국 어디에도 예체능 학과가 대학에 한국처럼 민들레꽃 피듯이 분분히 개설된 데가 없다. 외국은 스포츠클럽 또는 콩세르바투아르(conservatoire, 예술학교)가 중심이다. 줄리아드 음대가 아니라 줄리아드 음악학교(Julliard Music School)다. 우리나라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유일한 콩세르바투아르다. 한예종의 음악과는 설립 후 바로 세계적 명문으로 도약, 지금은 줄리아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외국의 예체능 대학은 실기가 아닌 이론을 공부하는 극소수의 학생용이다. 노르웨이는 평창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인구는 530만밖에 안 된다. 그럼에도 스포츠클럽이 1만1000개나 된다고 한다.

선비의 나라 한국은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서당은 전국 어디에나 있었지만, 무도관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과 응시생은 개별적으로 따로 훈련했다. 서당에서는 글만 읽었지, 운동은 숨쉬기 운동과, 다리 꼬고 앉아 또는 무릎 꿇고 앉아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윗몸을 앞뒤로 흔드는 게 고작이었다. 사무라이의 나라 일본과는 정반대였다. 일본은 전국 어디에나 무도관이 있었다.

일반학과가 목표인 고3 학생들이 운동이든, 노래든, 그림이든 아예 담을 쌓고 하늘이 노래지도록 공부만 하는 것이나, 예체능 학과가 목표인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전공에 할애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누가 누구를 향해 삿대질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유독 체육선수들은 무식하다고 욕을 많이 먹는다. 조선시대의 무인천시(武人賤視) 유습이다.

체육특기자 선발 및 학사관리 개선방안 심포지엄. 연합뉴스
체육특기자 선발 및 학사관리 개선방안 심포지엄. 연합뉴스

특별히 개인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체육 특기생의 학력은 중2를 넘기 어렵다. (주로 일반학생이 지원하는 서울소재 체육학과는 성적이 상당히, 엄청 좋아야 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한국은 1976년 양정모부터 시작해서 120개쯤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대학졸업장을 갖고 있고 그들 중 대학 교단에도 숱하게 섰지만, 대학졸업 당시 기준으로 학력이 고1이라도 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긴 특수반 학생 포함해서 그보다 훨씬 못한 학생도, 출석일수 3분의 2만 채우면 고등학교까지는 빛바랜 졸업장을 받을 수 있다.

일반학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열심히 운동해도 체육 특기생으로 따지면, 고1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 천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다. 선수 출신과는 아예 상대가 안 된다.

특혜를 문제 삼으면, 체육 특기생을 뽑고(체육학과가 없으면 아무 과나 학생이 원하는 대로 보내서 대학의 광고 모델로 삼고) 학점과 출결을 관리해 준 대학 교수들과 중고교 교사들은 정유라의 경우에서 보듯이 벙어리 입을 한 채 줄줄이 감방에 가야 하는가. 선수의 학력은 모조리 초졸, 또는 중졸로 만들고? 하, 전국의 감방을 얼마나 늘려야 할까.

정유라. 연합뉴스
정유라. 연합뉴스

대기업 특혜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자유로운 선수는 한 명도 없다. 대기업의 특혜가 없었으면, 한국은 아직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1개도 못 땄을지 모른다. 인구 13억의 인도를 보라. 올림픽에서 인도가 금메달 따기는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1962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때만 해도 인도(2위, 금10·은12·동11)는 한국(6위, 금4·은9·동10)보다 월등히 성적이 좋았다. 불과 4년 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끝나던 1966년부터 인도(5위, 금7·은3·동11)는 한국(2위, 금12·은18·동21)에 역전되었다. 막 기지개 켜기 시작한 한국 대기업의 집중지원 덕분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대기업의 특혜 덕분에 한국은 그 후로 스포츠에서 승승장구한다. 1984년 LA올림픽부터 한국은 세계의 스포츠 강국과 어깨를 겨룬다.

평창올림픽 팀킴 은메달. 연합뉴스
평창올림픽 팀킴 은메달. 연합뉴스

평창올림픽에서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여자 컬링 팀은 은메달을 땄는데, 거기에 신세계가 쏟아 부은 돈이 100억 원이다. 공금유용으로 신세계의 회장을 다짜고짜 여론의 단두대에 세워야 할까.

평창올림픽에 1조원을 협조한 대기업의 총수나 공기업의 최고경영인, 더하여 현직 대통령을 모조리 공금유용으로, 국정농단으로, 정경유착으로 기본 300일 정도 자유를 박탈하고 국가가 값싼 숙식을 제공해야 할까. 대기업 총수와 선수 사이의 사적인 관계를 사돈의 8촌 아니지, 사돈의 80촌까지 조사해야 할까. 수상한 관계가 드러날 때까지! 기부와 뇌물의 귀걸이 코걸이 기준, 그게 바로 적폐의 종결자(터미네이터)이다.

윤성빈이 금메달, 원윤종 등이 은메달 딴 얼음미끄럼틀(sliding track)은 건설비만 1억1450만달러(1230억원)나 들었고, 1년 유지비만 284만달러(30억원)나 필요하다. 그 돈을 누가 냈을까. 장차 누가 낼까.

그저 면담 한 번 했을 따름인데, 우리 반 태권도부는 스승의 날에 작은 꽃다발(bouquet)을 하나 들고 7명이 함께 교무실로 찾아와 싱그럽게 웃었다. 그들의 웃음이 카네이션보다 아름다웠다.

졸업을 앞두고, 태권도부가 일치단결하여 동창회비 만원을 안 낼 거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다른 학생들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는 소문도 들렸다. 다른 반 태권도부는 알 바 없었고, 나는 우리 반 태권도부 7명을 조용히 불렀다.

“너희들이 반에서 친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안다. 관악고에 대한 소속감이 쥐뿔만큼도 없다는 것도 안다. 경멸의 눈초리에 질렸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너희들은 앞으로 평생 관악고 졸업이라고 이력서에 쓸 것이다. 학교가 뭘 해 준 게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한 번도 학비를 낸 적이 없지 않느냐. 1년에 100만원이라고 해도 관악고는 너희들에게 일인당 300만 원의 혜택을 주었다. 음, 알랑가 몰라, 만원 중 5천원은 재학생의 선물 명목으로 너희들에게 돌아간다. 졸업식 때 너희들만 졸업 선물을 못 받는 것도 좀 우습지 않겠나?”

그들은 그다음 날 반장을 찾아가 의기양양하게 동창회비를 냈다. 졸업식 날 내게 꽃다발을 준 학생은 그들 7명밖에 없었다. 스승의 날에 받은 것보다 두세 배 풍성한 꽃다발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였던가, 청소년 태권도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한 쾌거로 태권도부의 꿈 경희대 태권도학과에 입도선매된 학생이 대표로 꽃다발을 들고 오더니, 일렬횡대로 섰다.

“차렷, 경례!”

“선생님, 감사합니다!”

내내 웅성웅성하던 우리 반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이윽고 일제히 우레 같은 박수로 그들의 앞날을 축복했다.

(2018. 3. 8.)

◇ 필자 최성재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전 영어교사
문화·교육평론가

csj@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새마루 2018-03-11 21:49:03
탄핵정국의 핵심 화제이기도 했던 정유라 사태를 반추해보며,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 정책과 그 한 축을 담당해왔던 대기업들의 노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주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