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에 갤런당 5달러를 훌쩍 넘는 휘발유 가격이 게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 위로 치솟았다. /연합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한 주유소에 갤런당 5달러를 훌쩍 넘는 휘발유 가격이 게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5달러 위로 치솟았다. /연합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 선을 돌파했다. 2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일보다 배럴당 7% 급등한 110.6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의 5월물 브렌트유도 오후 7시 43분 현재 배럴당 7.9% 치솟은 113.26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 수출은 세계 공급량의 8%를 차지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피해가 커지고, 서방의 러시아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 공급망에 큰 차질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국제유가를 밀어올리고 있다. 더구나 각국 정유업체들이 제재 위반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하면서 에너지 공급 문제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공개한 ‘국제유가 상승이 산업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과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통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진입할 경우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나마 이는 ‘순한 맛’ 시나리오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로 오르면 성장률은 0.4%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4%포인트 상승시킬 것으로 내다봤다. 오일쇼크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할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경제학회도 지난달 10~11일 개최된 ‘2022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물가 급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경기는 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경제전망 발표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3.0%로 제시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물가 급등, 대출금리 인상에 따른 소비여력 감소, 중국경제 둔화 등으로 2%대를 예상하는 시각이 많다.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마찬가지. 한국은행은 3.1%를 전망치로 내놓았지만 오일쇼크를 배제하더라도 이미 위험 수위를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는 3.6% 오르며 4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조차 통계 착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미국은 물가 통계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2%에 달하지만 한국은 10%에도 못 미친다. 매매가격 상승분을 자가주거비로 환산해 반영하는 미국과 달리 전월세 가격만 물가 통계 대상에 올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22%가량 급등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물가 통계에는 반영되지 않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는 한국에만 드리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쟁 리스크로 국제유가가 뛰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은 글로벌 화두(話頭)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인플레이션 → 소비 위축 → 경기 둔화의 수순을 밟으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재발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글로벌 원자재와 곡물 가격을 밀어올리면서 물가를 자극하고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는 1970년대 욤 키푸르 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욤 키푸르 전쟁은 지난 1973년 벌어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으로 주요국은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과 마이너스 성장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었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향방에 따라 국제유가가 배럴당 12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미국의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전쟁 리스크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질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경제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25bp(1bp=0.01%포인트) 기준금리 인상을 제안하고 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신중한 긴축’을 시사한 것이다. 하지만 미 연준 일부 위원들은 오는 15~16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여전히 0.5%포인트 인상, 즉 빅스텝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자니 경기 침체가 우려되고, 긴축을 늦추자니 물가 폭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 연준 수뇌부는 일단 경기 회복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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