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단일화가 3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번 대선 초반부터 야권의 화두였던 후보 단일화가 사전투표(4∼5일)를 하루 앞두고 현실화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선거기간 막판 단일화에 합의하며 대반전을 이뤘다.
지난달 27일 윤 후보 측이 협상 과정까지 공개하며 단일화에 대한 가능성은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전날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후 심야부터 이날 새벽까지 급격하게 단일화 합의가 진행됐다.
결국 두 후보가 직접 얼굴을 맞대고 마주 앉은 지 2시간 반 만에 공동선언문 초안이 나왔다. 과거 윤 후보가 말했던 대로 ‘후보 간 담판’한 번 만에 단일화가 성사된 셈이다.
두 후보가 만난 장소는 윤 후보 측 장제원 의원의 매형이자 안 후보와도 친분이 깊은 성광제 카이스트 교수의 강남 자택이었다. 성 교수는 과거 안 후보가 카이스트에서 교수로 재직할 때 서로 알고 지낸 사이로, 안 후보의 ‘동그라미재단’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 2일 TV토론 직전 尹·安측 "만나자" 긴급 제안…토론 후 ‘합의’
양당 관계자에 따르면 그간 단일화 물밑 협상을 진행해왔던 ‘전권 대리인’ 채널인 윤 후보 측 장제원 의원과 안 후보 측 이태규 의원은 지난달 27일 협상이 잠정 결렬된 이후에도 "인간적인 관계를 끊지 말고 끝까지 노력하자"며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안 후보 측이 단일화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이번주 초부터였다. 지난달 28일 윤 후보의 춘천 유세 때는 윤 후보 측 권성동 의원에게 ‘김미경 교수(안 후보 배우자)가 마음이 바뀐 것 같으니 지금 안 후보에게 만나자고 하면 될 것 같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안 후보 부부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제3의 인사를 통해 전달됐다.
지난 1일 국민의당 내부 회의에서는 단일화 여부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안 후보가 결과적으로 이 회의를 마친 뒤 단일화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고 양당 관계자는 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마지막 TV토론이었던 전날 토론 시작 전에도 양측 대리인인 장제원·이태규 의원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사전투표가 시작되는 오는 4일 전이 사실상의 마지막 협상 시한이었다.
"내일(3일)이 마지막인데, 정치를 10년 이상씩 한 사람들끼리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게 하자", "정치적 목숨을 걸고 한번 해보자"는 취지의 장·이 의원 간 ‘의기투합’이 있었다. 양측은 TV토론 종료 후 각 후보와 함께 만나기로 약속했다.
2일 밤 10시 TV토론이 끝나자마자 장 의원은 윤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협의 내용을 보고했다. 이 의원 역시 토론을 마친 안 후보를 비밀리에 국민의당 당사로 인도해 윤 후보와 만나야 한다고 설득했다.
2일 밤 11시 50분, 강남구 선릉역 근처 역삼동에서 진행된 윤 후보의 유튜브 촬영이 끝난 뒤 윤 후보와 안 후보는 성광제 카이스트 교수의 논현동 자택에서 마주 앉았다. 장제원·이태규 의원이 회동에 배석했다.
◇ 회동 시작부터 분위기 화기애애
윤 후보와 안 후보의 회동에선 시작부터 어색함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양측의 단일화 ‘거간꾼’들이 서로의 말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를 풀고 진의를 확인한 두 후보는 ‘조건 없는 가치연대’를 전제로 한 단일화 담판을 타결했다.
윤 후보는 안 후보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윤 후보는 "안 후보가 얘기하는 정치교체, 세대교체, 시대교체에 공감한다. 그러나 현 정부를 교체하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꿈꾸는 그것들을 이룰 수 있겠나. 정권교체라는 시대적 소명을 우리 둘이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도 바라는 바인, 안 후보의 개혁과 실용주의, 과학기술 어젠다들을 이룰 수 있다면 저는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후보는 "정권교체를 앞에 두고 다른 얘기를 할 게 뭐 있나. 잘해야죠"라며 윤 후보의 단일화 제안을 수락했다.
◇尹 "종이쪼가리가 무슨 소용인가? 나를 믿어달라"
두 후보의 담판 자리에서 대선 승리 후 자리 보장이나, 대선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등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은 오가지 않았다고 양당 관계자는 전했다.
이날 안 후보는 윤 후보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항목을 적어 등장한 것으로 전했다. 안 후보는 " 그동안 정치하면서 만든 단일화 각서와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결국 신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윤 후보는 "맞다. 종이쪼가리 뭐가 필요하겠나. 나를 믿어라, 나도 안 후보를 믿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후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한 대통령이 없지 않느냐. 날 대통령을 만들어서 성공시켜라. 성공한 정권을 함께 만드는 게 당신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 아니냐"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후보도 윤 후보에게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느냐. 지금까지 성공한 대통령은 없지 않았나.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윤 후보는 "내 장점은 결정이 빠른 것이지만, 그 결정을 혼자 하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했다"며 안 후보에게 재차 "우리 함께 유능한 정부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윤 후보는 "현재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안 후보는 과학기술 강국을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있지 않나. 안 후보는 저를 믿으세요. 저는 안 후보를 믿겠다. 믿고 손잡고 가자. 성공한 정부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 기자명 임정현 기자
- 입력 2022.03.03 15:18
- 수정 2022.03.0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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