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의 이단아들]마사초(Masaccio)-원근법(遠近法)을 회화에 적용한 화가
[예술사의 이단아들]마사초(Masaccio)-원근법(遠近法)을 회화에 적용한 화가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8.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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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세 (1425년경) - 산타 마리아 성당, 피렌체
마사초의 성전세 (1425년경) - 산타 마리아 성당, 피렌체

고전문화는 중세에도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교에 가치 있고 필요한 것만 변형되어 수용된 스콜라철학이 주를 이루었다. 스콜라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이성을 통하여 입증하고 이해하려 했던 중세 철학이다.

스콜라는 중세 수도원의 학교·교사·학생을 통칭하는 라틴어 스콜라티쿠스(Scholasticus)에서 유래된 말이다. 스콜라학자들 대부분은 수도원 학교 출신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들은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철학이론들을 수집·정리·발전시켰다.

스콜라 학자들과 달리 르네상스인은 그리스·로마 고전문화를 그리스도교를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자체가 재미가 있고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에 빠져들었다. 또한 초자연적인 것보다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감각을 믿었다. 희생보다 충족, 자기억제보다 자기만족에 더 큰 가치를 두었다.

거기에 더해 언제부턴가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로마제국의 후손이라는 자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것은 찬란히 빛났던 역사의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들은 고대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수집하는 한편 필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찬란한 문화유산은 오래지 않아 사라질 터이기 때문이었다. 고전작품에 경의를 표했으며, 위대한 거장들을 향한 찬미의 글을 즐겨 썼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공성전 상상도
콘스탄티노플 함락, 공성전 상상도

1453년,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투르크에 함락되면서 그리스 학자들이 이탈리아에서 볼 수 없었던 고대의 원전(原典)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역설적으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고대 그리스의 지식과 문화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거기다 14세기 초부터 상업자본이 발달하더니 어느덧 이탈리아는 지중해 무역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유럽 가운데 가장 일찍 봉건제가 해체되었다.

14부터 16세기는 서유럽 문명사의 일대 전환기로, 유럽인들이 중세의 긴 잠에서 깨어나 세계와 인간에 대해 새로운 눈을 떴다.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가 열린 것이다. 르네상스는 라틴어 레나스키(Renasci)에서 유래한 말로 재생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곧 고대그리스·로마문화의 재생이었다.

중세의 문화가 신중심의 문화였다면 르네상스는 인간중심 문화였다. 그러한 문화는 인간 존중사상 곧 휴머니즘 정신으로 승화되었다. 그들은 신의 영광을 위하여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였던 인간의 존재를 독자적인 가치에서 바라보았다. 중세의 봉건적,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난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이 싹텄다. 르네상스를 가리켜 <인간과 세계의 발견>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인간성의 긍정은 곧 개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到來)였다. 마침내 신이 중심이 된 사회(신본주의)의 케케묵은 관습과 규범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들은 혼탁하고 답답한 집안의 공기를 집밖의 신선한 공기로 바꾸었다. 처음에 소수의 인문학자들과 예술가들이 공기를 바꾸기 위해 창문을 열었지만, 뒤이어 대중들이 거기에 동참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예술의 본래 취지가 ‘모방론’ 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앞서 보았다. 마찬가지로 르네상스인들의 예술관은 또한 ‘모방론’이었다. 미의 개념은 부분과 전체의 규칙적인 비례와 조화의 일치를 통해 획득되는 것이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이러한 고대그리스의 예술 본령을 한층 더 발달시켜 새로운 화법을 창안했다.

원근법(遠近法)은 외부세계를 완벽하게 재현해낼 수 있는 새로운 화법이었다. 원근법은 고대그리스와 로마의 화가들도 구사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원근법은 시각의 논리적 체계를 갖춘 과학적 원근법이 아니었다. 르네상스 이전의 어떤 화가도 거리의 정경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리지 못했다.

원근법의 기초를 만든 또 한 사람의 건축가는 ‘회화론’의 저자 레온 바티스트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였다. 알베르티는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길이 한 점으로 소실되는 ‘피라미드 도식’을 통해 원근법을 설명했다.

알베르티의 원근법 이론. 1435년
알베르티의 원근법 이론. 1435년

원근법의 또 다른 발명자는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였다. 원근법을 설명하기 위해 알베르티가 글을 사용했다면,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건축물을 그려 대중에게 시연하기도 했다.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시연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시연

원근법은 한마디로 3인칭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주체를 1인칭의 시점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마사초(Masaccio, 1401∼1428)는 선대의 이론을 회화에 적용했다. ‘성 삼위일체’는 수학적·과학적 원근법이 최초로 회화에 적용된 예다.

성 삼위일체. 마사초. 1425년경.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성 삼위일체. 마사초. 1425년경.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선 원근법을 적용한 이 그림은 세계 회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그림은 벽화인데 마치 그림이 그려진 벽면이 움푹 들어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제 모습보다 더 사실적이다.

마사초는 토스카나 지방의 카스텔 산조반니에서 출생했다. 그러나 그에 관한 문헌기록은 거의 없다. 1427년 피렌체에서 살다가 1429년 스물여덟 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고대그리스 ‘모방론’을 계승한 르네상스시대 화가들은 사물을 완벽하게 재현했다. 화가들은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한층 더 돋보이게 그렸다. 이처럼 원근법은 고대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이론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예술을 실재에서 떨어진 유사물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보다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이미지이다.” 

sgp@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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