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5.30으로 전년 동기 대비 3.7% 올랐다. 5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인데, 이처럼 장기간 3%대 이상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2010년 9월~2012년 2월 이후 10년 만이다.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1월 3.8%, 12월 3.7%, 올해 1월 3.6% 등으로 완만한 하락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로 다시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4~5%로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한데 이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당시 국제유가는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140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를 넘어 150~18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투자은행 JP모건은 공급 충격이 이어질 경우 배럴당 185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1월 말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60달러 선까지 급락했었다. 이를 감안하면 3~4개월만에 3배 이상 폭등하는 사태도 초래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전망치를 내놓기 무섭게 국제유가가 오르고 있어 전망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가 상승 압력의 요인은 오일쇼크 뿐만 아니다. 소비자물가 조사 대상이 되는 460개 품목 가운데 계절적으로 영향을 받는 농산물과 외부적 요인에 영향을 받는 석유류 등 53개 품목을 제거하고 나머지 407개 품목을 별도로 집계해 계산하는 근원물가도 올들어 두 달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1월 3.0%였던 근원물가 상승률이 2월에는 3.2%까지 높아진 것이다. 이는 2011년 12월의 3.6% 이후 최고치다.

쌀·배추·쇠고기처럼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기본 생필품 156가지를 선정해 가격 변동을 나타낸 생활물가지수는 전년 동기 대비 4.1% 상승했다. 특히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 물가인 밥상물가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곡창지대다. 농경지 면적이 42만㎢로 한반도의 두 배에 가깝다. 밀 수출량은 세계의 12%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항구는 모두 폐쇄된 상태다. 농부 대다수는 군에 징집됐고, 비료와 농약을 확보할 수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밀 수출 비중은 29%에 달한다. 또한 양국은 세계 옥수수 수출의 5분의 1을 담당한다. 최근 국제곡물 가격이 치솟고 있는 이유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5월물 밀 선물은 부셸(27.2㎏)당 11.34달러에 거래됐다. 1주일 새 33% 치솟아 14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옥수수 가격도 10년 만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옥수수는 4분의 3부셸당 7.66달러로 2.5% 올랐고, 대두(콩)는 0.6% 상승한 2분의 1부셸당 16.78달러에 거래됐다.

쌀 가격도 요동치고 있다. 5월물 쌀 선물 가격은 100파운드(약 45.3㎏)당 16.36달러에 거래됐다. 1주일 전보다 6.1% 오른 것으로 2020년 5월 이후 최고가다. 쌀 가격이 급등한 것은 이미 오른 밀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곡물 가격이 치솟으면서 세계 각국은 서둘러 곡물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우크라이나로부터 옥수수와 보리를 수입해 왔다. 브라질에서도 곡물을 수입할 수 있지만 브라질은 지난해 기상악화로 생산량이 줄었다. 이로 인해 미국산 옥수수와 대두 수입을 늘리고 있다. 중국이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는 미국에까지 손을 뻗쳐 공격적으로 곡물 확보에 나선 것은 이번 곡물 공급난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기도 하다

이 같은 상황은 세계 식량 위기와 연동될 수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FFPI)는 140.7을 기록해 1996년 집계 시작 이래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02∼2004년 식량 가격의 평균치를 100으로 정해 현재의 가격 수준을 지수로 표현한 값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국제곡물 가격 급등을 낳고, 이것이 인플레이션 부담을 키우면서 식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의 빈곤층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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