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10)
(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10)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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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일보는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18년 2월 기파랑 출판)⟫을 연재합니다. 자유일보 애독자들에게 대한민국 경제의 본질적 고질적 병폐인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10>경제발전을 하려면 민주주의를 먼저 정착시켜야 한다?

제1장 저성장과 양극화의 원인;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제2장 경제발전의 일반이론: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1. 자본주의 복잡경제의 발전: 신상필벌의 공정한 경제적 차별의 산물

2. 경제발전의 원리: 시장·정부·기업의 삼위일체 경제발전론

3.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와 ‘일반이론’의 경제세계관

4. 자본주의 경제발전을 위한 이념

5. 경제발전의 열 가지 신화와 진실

6) 산업정책은 불공정무역 관행이며, 실패하는 정책이다?

산업정책은 이름부터 잘못되었다. 기업정책이 정명(正名), 즉 올바른 정책 이름이다. 산업은 다양한 기업의 집합일 뿐이다. 기업만이 진정으로 정책이 의도하는 인센티브 구조 변화에 반응하는 유기체적 경제주체이다.

기업정책으로서 산업정책은 정부 기능의 일부로서 신상필벌의 차별화 정책으로 시행되어야 성공한다. 성공하는 기업들이 더 많은 자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신상필벌에 따른 공정한 자원배분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은 시장의 기능을 확충하는 것으로 정부의 기본적인 경제발전 기능이다.

이런 원리 하의 기업육성 정책은 장려되어야 한다. 산업정책을 백안시하고 있는 WTO 등의 국제기준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선진국, 후진국 모두가 오명(誤名)의 산업정책에 매달리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7) 경제발전은 국민경제 총자원의 합이다?

주어진 자원이 경제발전의 외연적 한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이런 생각은 기업을 생산요소로 분해하는 환원주의적 사고의 결과이다.

부존자원은 결코 경제발전의 절대적 한계가 아니다.
부존자원은 결코 경제발전의 절대적 한계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비선형적 상호작용, 시너지 창출 기능을 통해 창발을 이끄는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현대적 기업의 창발 기능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독특한 창조경제 시스템이다. 자본 베이스와 위험부담 능력을 무한대로 확대할 수 있는 현대적 기업조직은 없는 자원을 창출하여 마차경제를 우주선경제까지로 창발시키는 역할을 한다. 부존자원은 결코 절대적 한계가 아니다.

8) 경제이론과 정책은 이념에서 자유로워야 하며 자유로울 수 있다?

‘정치경제학’이라는 경제학의 본명은 정치현상과 독립적으로 경제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였다. 경제발전 현상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부분을 망라하는, 말하자면 종합예술이며, 그래서 경제를 다루는 학문도 이를 반영하여 정치경제학이라 불렀다.

그러나 경제학은 20세기 후반 이후, 특히 신고전파 종합 이후, 경제학의 수리적 정치성(精緻性)을 기초로 과학화 과정을 거치면서 경제이론에서 정치이념을 배제하고 정치경제학을 벗어나 자연과학과 같은 반열의 과학화에 성공하였다. 제도가 없는 추상화된 경제학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제학은 학문으로서 정치이념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현실경제는 여전히 정치와 정치이념은 물론 사회문화적 배경 등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민주정치가 보편화되면서 정치의 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더 커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최근 들어 경제학의 현실 설명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경제학은 정치와 정치이념의 경제적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어떤 정치체제가 경제발전, 특히 동반성장 발전에 친화적인지를 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를 통해 정치의 경제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제 중심의 정치경제체제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필자는 경제정치학이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정치학이란, 정치적 고려 하에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를 수단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고려 하에 정치가 경제를 합목적적으로 뒷받침하는 학문체계를 의미한다. 좌승희(2012) 참조.

9) 경제발전을 하려면 민주주의를 먼저 정착시켜야 한다?

18세기 후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맹아와 함께 등장하기 시작한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 상호 시너지를 내면서 공진화(共進化)해 왔다. 2차대전 이후에는 경제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인양 과거 식민지 등 신생 후진국들에 수출되었다. 20세기 후반 냉전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의 공산·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승리로 끝나면서 혹자는 이를 끝으로 체제전쟁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Fukuyama 1992). 이제 자유와 평등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민주주의는 어떠한 가치보다도 중요한 정치이념으로서 심지어 신(神)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시장경제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의 만병통치약인 양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나 증거는 그리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많지 않지만, 20세기 들어 가시적인 경제성장과 발전을 가져온 경우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비민주적인 정치체제였다. 논리적으로 보면 1인 1표 민주정치가 오히려 정치적 평등을 넘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평등민주주의’화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 차별화에 역행하는 경제정책체제를 만들어 내어 경제 성장, 발전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10) 흥하는 이웃은 나의 성장 발전의 걸림돌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는 흥하는 이웃은 항상 남을 착취하기 때문에 나의 성장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설파하였다. 이것이 공산·사회주의 이념의 뿌리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본질적 속성은 그 반대로, 흥하는 이웃이 무임승차 당하는 과정이라 했다. 이 과정을 통해 흥하는 이웃이 다량으로 복제되어 등장하는 과정이 바로 경제발전이라 했다. 이 과정 없이는 자본주의 경제든 아니든 이 복잡한 세상의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본서의 주장이다. 그래서 흥하는 이웃이 없이 내가 흥하고 모두가 흥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그래서 흥하는 이웃을 키워 내지도 못하고, 이왕 있는 흥하는 이웃을 청산이나 하는 경제는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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