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전남 고흥군의 한 양파밭에서 전국양파생산자협회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고, 저장 양파 즉시 수매 등 수급 안정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
지난달 23일 전남 고흥군의 한 양파밭에서 전국양파생산자협회가 트랙터로 밭을 갈아엎고, 저장 양파 즉시 수매 등 수급 안정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

전국 곳곳의 농지와 바닷가가 농·어민들의 울분을 담은 확성기 소리로 들끓고 있다. 정부의 불통과 독단적 정책 추진에 반발하는 농·어업인의 대정부 시위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일상적 일이지만 최근의 면면은 정권 말기에 성과 도출에 급급해 정책의 속도와 강도를 무리하게 높이면서 사회적 갈등 봉합에 실패한 ‘레임덕’ 현상의 전형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7일 한국양파연합회에 따르면 서울 가락시장 기준 양파 1㎏당 가격이 400원대로 하락했다. 1년 전 1900원 대비 70% 이상 폭락한 가격이다. 산지 도매가는 ㎏당 100원에 불과하다.

이처럼 양파값이 양파 농가의 최저생산비(㎏당 700원)에도 못 미치자 농민들은 속속 양파의 출하를 포기하고 있다. 지난 4일에도 전남 무안의 농민들이 양파밭 2800㎡를 갈아엎었다. 양파 농가가 자신의 밭을 갈아엎은 것은 지난달 24일 제주, 23일 고흥 등에 이어 벌써 네 번째다.

또한 주요 양파 산지에서는 연일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농가들의 집회와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양파연합회 관계자는 "양파값 폭락은 양파 소비가 줄어든 이유도 있지만, 정부의 수요 예측 실패로 저장 양파가 2만톤이나 남아 햇양파 출하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이라며 "연초부터 제기된 우려에도 미온적으로 대처한 정부가 화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실제 농림축산식품부는 양파값 폭락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지난달 25일에야 부랴부랴 저장 양파 출하 연기, 제주산 조생종 양파 산지 폐기 등 수급안정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양파 농가들은 턱없이 미흡한 대책이라며 저장 양파 수매 후 폐기, 조생 양파의 추가 산지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대선이 끝나는 이달 10일 당선자 사무실 앞에서 시위도 벌일 예정이다.

양파 농가에 더해 낙농가들도 정부와 극한 갈등을 빚고 있다. 양측의 대립은 농림축산식품부가 기존 원유 가격 결정체계의 개편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낙농가의 생산비와 연동해 원유 가격이 결정되는 기존 방식을 폐지하고, 원유를 음용유와 가공유로 구분한 뒤 용도별로 가격에 차등을 두는 낙농제도 개편안 추진이 그것이다.

소비자단체 등 전문가들은 생산비 등락에만 좌우되던 현행 원유 가격에 시장수요를 반영해 우윳값 안정을 꾀한다는 구상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소득 감소를 우려한 낙농업계의 반발에 부딪힌 정부가 대화를 통한 합의보다 속전속결에 치중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달 8일 농림축산식품부가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낙농진흥회의 이사회를 낙농가 측 이사진 없이도 열 수 있도록 행정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낙동가들은 이런 농림축산식품부의 행보를 ‘농정 독재’로 규정하고 우유 납품 거부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도 지난달 16일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를 열고 지금까지 국회 인근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달 2일에는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낙농가의 권익을 침해하는 일방 통행을 강행하고 있다"며 "현 정부의 집권기간 내에 어떻게든 개편안을 관철시켜 치적을 쌓으려는 느낌"이라고 주장했다.

정부 정책의 부당성을 부르짖는 목소리는 남해 바다에도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달에만 25일 경남 남해·사천·고성·거제·울산, 16일 당진·부산·통영·울산, 8일 여수 등지에서 더불어민주당 출신 시장이 이끄는 통영시·울산시가 추진 중인 해상풍력단지 조성에 반대하는 어업인들의 집회와 해상시위가 잇따랐다.

어업인들은 "해양환경에 큰 변화를 초래해 어민 생계를 위협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어민들의 동의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특히 남해군 어민들은 통영시 행정 행위의 부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이달 중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할 예정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현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농·어업을 챙기겠다’는 약속과 함께 출범했지만 임기 말까지 농어민들의 기대를 저버렸다"며 "역사가 공과를 평가하겠지만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기는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전남 고흥군의 한 양파밭에서 열린 ‘2022년 전국양파생산자대회’에서 양파 가격 폭락에 화가 난 농민들이 예초기로 양파대를 자르고 있다. /연합
지난달 23일 전남 고흥군의 한 양파밭에서 열린 ‘2022년 전국양파생산자대회’에서 양파 가격 폭락에 화가 난 농민들이 예초기로 양파대를 자르고 있다. /연합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농정독재 철폐,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몸에 우유를 부으며 납유거부 불사 투쟁방침을 알리고 있다. /연합
지난달 16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농정독재 철폐,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몸에 우유를 부으며 납유거부 불사 투쟁방침을 알리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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