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산스카


바로크 시대 음악 들을 때마다
팔레스트리나 들을 때마다
그 시대 풍경 다가올 때마다
하늘나라 다가올 때마다
맑은 물가 다가올 때마다

라산스카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김종삼(1921~1984)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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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유학 간 시인은 도쿄문화학원 문학부에서 공부하는 한편음악에 뜻을 두었다. 부친은 아들의 출세를 간절히 원했지만 그는 뼛속부터 예술가였다. 학업을 포기한 채 귀국한 그는 동아방송에서 음악효과 담당으로 일했고, 평생을 시와 음악과 술을 벗하며 살았다.

문학평론가들은 김종삼 시인의 시를 추상으로 보지만 그렇지 않다. 지나칠 정도로 순수해서 추상으로 보일 뿐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음악이 시작(詩作)에 미친 영향을 알아야 한다.

‘라산스카’는 무슨 뜻일까? 시인 살아생전에 한 여류작가가 그것을 묻자 농담처럼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라산스카가 뭐냐고? 그걸 말하면 밑천이 드러나게. 묻지 마. 난 그걸로 계속 장사할 거니까."

‘라산스카’라는 이름의 가수가 있었다. 유대인 소프라노 가수 라산스카. 그녀는 영혼을 울리는 맑은 목소리의 성악가였지만 세상에 이름을 떨치진 못했고 활동기간 또한 길지 않았다. 현재 SP음반이 보존돼 있는데, LP나 CD로 다시 제작되지 않았다. 시인은 무슨 이유로 라산스카에 그토록 매료된 것일까? 아마도 자신처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타지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던 디아스포라를 향한 연민은 아니었을까.

시인은 유성기에서 흘러나오는 고전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떠올렸을 것이다. 고전음악은 ‘그 시대 풍경’을 상상하게 만들고 뒤이어 ‘하늘나라’가 보이게 하고, ‘맑은 물가’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라산스카에게 고백하듯 ‘나 지은 죄 많아 죽어서도 영혼이 없으리’ 하고 말한다. 지은 죄 많아 영혼이 없고, 그래서 하늘나라에 들지 못할 거라는 고해(告解). 그리하여 그는 하늘나라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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