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의 이단아들]보디첼리와 사보나롤라 - 그들의 시대정신을 보라
[예술사의 이단아들]보디첼리와 사보나롤라 - 그들의 시대정신을 보라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8.0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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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첼리. 봄. 1478년 경. 템페라.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보디첼리. 봄. 1478년 경. 템페라.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르네상스인들은 개성을 존중하였고 평범하고 통속적인 것을 싫어했다. 또한 그들은 교양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양은 오늘날 교양에 대한 인식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오늘날 교양은 학문과 지식, 인격,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일컫는 말인데 반해 르네상스 시대는 모든 학문과 예술에 능하다는 의미였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교양인들이 많이 나왔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 등 1인 3역을 수행하는가하면 시인,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해부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였다.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메디치가에 모여들었던 인문주의 학자들과 시인들하고 친교를 맺으며 교양을 쌓은 뒤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르네상스
르네상스

메디치가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가(名家)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보호자로서 뿐만 아니라, 굴지의 금융업자로서, 또 피렌체공국과 토스카나공국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가문으로 유명하다.

피렌체 동북 무젤로 지방 출신인 메디치는 상업으로 성공하여 14세기부터 피렌체의 정치계에 등장하였다. 나중에는 혼인을 통해 프랑스와 영국 왕실의 일원까지 되었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권력 아래 피렌체를 둔 뒤 예술과 인문주의가 융성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메디치가를 제외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내는 큰 역할을 했다.

‘봄’은 메디치 가문에서 주문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보티첼리의 초기 대표작이다. 화면 한가운데 있는 여인은 비너스로 다른 인물들보다 뒤쪽에 서있다. 비너스 위쪽에는 큐피드가 화살을 쏘고 있다. 큐피드의 화살에 맞는 자는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는 여인들은 비너스의 세 시녀 삼미신(三美神)이다. 삼미신은 고대 회화에 이미 등장한 바 있다.

보디첼리는 이 작품을 통해 여성의 아름다운 나체를 그려냈다. 또 화면 왼쪽에서 오렌지를 따고 있는 인물은 헤르메스다. 헤르메스는 날개 달린 신발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해준다. 헤르메스는 상인들의 수호성인이기도한데, 비록 신화속의 인물이지만 상업이 발달한 피렌체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그때까지 주류를 이루던 종교화에서 벗어나 고대 신화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곡선미를 살린 특유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에 그려질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곡선미를 강조한 일련의 작품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1485년경. 캔버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1485년경. 캔버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이 작품에는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주된 관심사인 원근법을 통해 공간 개념을 부각시키고 인물의 입체감을 살리는 르네상스회화 방식이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후기 고딕 양식의 장식적이며 귀족적인 전통이 엿보인다.

이 작품이 그려진 1478년에는 메디치가는 정적(政敵)인 파치 가문의 자객들에 의해 로렌초의 동생 줄리아노가 미사를 보던 중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로렌초 역시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을 겪었다. 그 후 메디치가는 파치 가문을 비롯한 다른 정적들을 피렌체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이후 메디치가는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주문함으로써 피렌체에서 정치적 기반을 다시 공고해졌다는 사실을 알리고 평화시대의 도래를 세상에 알렸다.

메디치 가문
메디치 가문

메디치가에 모여든 인문주의 철학자들은 플라톤 사상이나 로마의 플로티노스 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신플라톤주의를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신플라톤주의란 3세기의 로마의 플로티노스가 발전시키고 그 후계자들이 수정해나간 그리스 철학의 마지막 형태로서의 철학이었다.

이에 의하면 철학은 추상적 사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감각·지각뿐만 아니라 관념을 넘어 실재들을 직접 파악하고 본성을 깨닫는 것이다.

보티첼리는 이러한 신플라톤주의에 영향 아래에 그림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은 바로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걸작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주제를 가져왔다. 바다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비너스가 조가비를 타고 서풍에 밀려 해안에 당도한 신화 속의 이야기를 묘사한 것이다.

이 그림은 전통적 화법인 사실주의를 무시했지만, 양식화(様式化)된 표현과 곡선미를 한껏 구사했다. 한마디로 장식적 구도 속에 시적(詩的) 세계를 표현한 걸작이다.

보디첼리. 자화상
보디첼리. 자화상

1498년에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의 화형식이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벌어졌다. 시뇨리아 광장은 피렌체 역사의 중심부이다. 그곳에는 다비드상을 비롯해서 코시모1세의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코시모1세는 메디치 가문으로 토스카나 대공국 군주다. 그 동상 옆에 초라한 사보나롤라의 화형터가 있다. 사보나롤라는 이곳에서 1498년 5월 23일, 피렌체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작불에 태워져 순교했다.

메디치가의 코시모1세 동상. 그 옆에 초라한 사보나롤라의 화형터가 있다
메디치가의 코시모1세 동상. 그 옆에 초라한 사보나롤라의 화형터가 있다

14세기에 이르러 정치권력이 된 메디치 가문은 종교권력과 야합했다. 메디치 가문은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을 동시에 장악하였다. 메디치 가문에서 두 명의 교황 조반니와 일렉산드로가 배출되었다. 조반니는 훗날 교황 레오10세가 되었고, 알레산드로는 교황 클레멘스7세가 되었다.

사보나롤라가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파견된 것은 메디치가의 세력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무렵이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교황과 교회의 부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메디치가의 통치에 대한 공격이기도 했다.

가난과 귀족의 전횡에 억눌린 민중들은 그의 설교에 환호했다. 사보나롤라는 경건한 수도생활을 개혁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그 무렵 프랑스 왕 샤를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사보나롤라는 평민들과 함께 싸워 적군을 무찔렀다. 그는 마침내 피렌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로 등극했다.

1497년 사보나롤라는 종교개혁을 선포했다. 광장의 군중에 둘러싸인 그는 화려한 옷과 풍기 문란한 책들을 수거하여 불태웠다. 그는 세속적인 음악을 금지하고 성가를 보급했으며 행정과 조세 개혁을 단행했다.

사보나롤라의 화형 장면, 산 마르코 수도원
사보나롤라의 화형 장면, 산 마르코 수도원

사보나롤라는 교황 알렉산더6세를 대놓고 비난했다. 알렉산더6세는 자식을 다섯이나 둔 세속적 교황으로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교황에게 사보나롤라는 눈에 가시였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추기경 자리를 제안하며 회유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추기경의 붉은 모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흘린 순교의 피입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를 반대하는 무리와 손잡고 사보나롤라를 수도원장직에서 파문했다. 뒤이어 화형선고를 내렸다. 그의 지지자들은 한순간에 적대자로 돌변했고, 사보나롤라는 군중의 야유소리를 들으며 불길 속에 던져졌다.

훗날, 루터는 사보나롤라를 두고 프로테스탄트 최초의 순교자라 했다. 사보나롤라의 화형은 존 위클리프와 요한 후스를 이어 루터에 도달하는 종교개혁의 역사였다. 수도원장 사보나롤라의 개혁은 당대의 시대정신이었다.

사보나롤라의 주검을 목격한 보디첼리는 충격에 빠졌다. 1504년에 미켈란젤로의 다윗상 설치 장소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과 함께 출석하기도 하였으나, 그 후로는 작품 활동과 소식마저 끊고 은둔으로 생을 마감했다.

◇필자 박석근 작가는?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저서

ㆍ장편소설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책세상

ㆍ장편소설 <숨비소리> 책세상

ㆍ창작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 민음사

ㆍ청소년지식소설 <수상한 화가들> 사계절 등

sgp@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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