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승리 요인은...

8개월 전 정치로 들어섰을 때 지원해 주는 세력 없던 상황
'사람에 충성 않는 사람' 입증...국민들 열렬한 지지로 화답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제주시 동문시장 일대에서 열린 ‘제주와 함께 승리합니다’ 제주도 거점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8일 제주시 동문시장 일대에서 열린 ‘제주와 함께 승리합니다’ 제주도 거점유세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본격적으로 정치인이 된 지 불과 8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정치 신인이다. 8년도 아닌 8개월이다. 그런 정치 신인이 대권이라는 정치인 최대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정치적 채무’로부터 자유로운 ‘신인’였다는 역설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대권이라는 목표를 향해 뛰지만 수십년 넘게 정계에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조차도 극히 일부만 대권에 도전해봤을 뿐이다. 그나마도 대권을 거머쥐지 못하고 도전한 것에 만족하고 물러난 정치인들도 부지기수다.

정치인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치 생활이 오래될수록 ‘계파’라는 줄을 타게 된다. 혼자보다는 둘이 강하고, 집단화된 힘이 있을수록 정치 생명을 유지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3金 시대’가 대표적인 계파정치 시대였다. YS(김영삼)의 ‘상도동계’, DJ(김대중)의 ‘동교동계’, JP(김종필)의 ‘자민련계’ 등 삼김시대에는 어느 계파에든 속하는 것이 중요했다. 계파에 소속돼야 선배가 끌어주고 후배가 밀어주는 지원을 받으며 더 넓은 무대로 나갈 수 있었고, 어떤 계파에도 속하지 못한 ‘독고다이’는 다음 선거에서의 공천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삼김시대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계파정치는 살아있다. ‘친노’, ‘친문’, ‘친박’ 등이 바로 21세기의 계파정치다. 계파가 개별 정치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시켜주기는 하지만 당연히 그 정치인들은 계파에 크고 작은 빚을 지게 된다.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 뒤에 항상 논란이 되는 ‘보은 인사’ 역시 그런 계파 정치의 부작용이다.

윤 당선인이 2년 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될 때까지만 해도 그가 정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어떤 특정 계파로부터의 영입 시도도 없었고, 그에게 정치적 지원을 해주는 세력도 없었다. 당연히 정치적 부채가 쌓일 이유가 없었다.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이 됐을 때 그가 현 정권으로부터 임명받은 사람이라는 것도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 야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의 거센 검증을 견뎌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를 보호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1년 6개월 뒤, 그가 야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상황이 뒤바뀌었다.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거센 검증을 통과했던 윤 당선인에 대해 더이상 검증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반대로 여당은 자신들이 보호했던 윤 당선인을 뒤늦게 검증하려다가 ‘자기부정’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여당에서 이미 ‘문제없다’고 검증한 것을 다시 끄집어내서 ‘문제있다’고 말한다면 여당 스스로의 검증기준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말할 뿐이었다.

윤 당선인은 검찰총장 시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수사하며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가 인사청문회에서 말했던대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대로 증명한 것이다.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법의 원칙에 따라 소신대로 수사하는 검찰총장의 등장에 국민들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현 정부의 무능과 ‘내로남불’을 심판하기 위해 꼭 이뤄내야 할 정권교체의 열망이 ‘정치적 채무’가 없는 윤 총장의 자유로움을 동력 삼아 ‘정치 신인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각본없는 드라마를 완성한 셈이다.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0선’이라는 것도 불리한 조건이 아니었다. 윤 당선인의 생애 첫 선거가 하필이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선거였지만, 첫 선거였기에 지역구도 없었고 지역 후원회도 없었다. 지역주의를 의식할 필요조차 없었던 셈이다. 항상 입으로는 지역주의를 타파하자고 하면서도 선거철만 되면 지역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정치신인의 대선 승리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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