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근
박석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유럽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은 민간인 집단학살 범죄인이다. 21세기 대명천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옛사람 말은 이번에도 옳았다. TV 화면을 통해 전황(戰況)을 보는 게 고통스럽다.

외신에 따르면 세계 각국에서 2만여 명에 달하는 의용군이 우크라이나 군에 합류했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의용군 지원자도 1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매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문의가 오고, 대사관측은 18세 이상 군복무를 마친 성인에게만 관련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해군 특수부대 출신 예비역 대위 이근 씨가 우크라이나 의용군으로 참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신상을 공개하며, 대한민국 외교부를 향해 의용군 지원을 막느라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우크라이나를 도울지에 대해 고민하라고 충고했다. 그의 이런 충고는 외교부의 다음과 같은 엄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의용군 참전자에게 실정법상 제재를 가할 것이다. 외교부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선포했다. 여권법 제17조는 외교부 장관이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특정 국가나 지역을 방문하거나 체류하는 것을 중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기간을 정해 여권사용을 제한하거나 방문·체류를 금지할 수 있고,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형법의 사전죄(私戰罪) 처벌조항도 있다. 사전죄란 정부의 선전포고나 전투명령이 없음에도 개인이 마음대로 외국에 대해 전투행위를 할 경우 성립하는 죄로 1년 이상 금고에 처하고, 이를 사전 모의한 경우 3년 이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에 반해 영국, 덴마크 등 유럽 각국 정부는 의용군 참전을 법으로 막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시정부 발표에 의하면 외국인 의용군은 약 2만여 명 정도로 대부분 유럽 출신이라고 한다. 기독교 문화가 바탕 된 유럽 각국은 오래 전부터 ‘착한사마리아인법’을 두고 있다. 이 법은 타인의 생명에 중대한 위험이 발생한 것을 목격하고도 별다른 이유 없이 구조에 나서지 않으면 벌을 준다.

이것은 신약성서의, 강도를 만나 죽게 된 사람을 제사장이나 레위사람도 그냥 지나쳤지만 단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이 성심껏 돌봐 구해 주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착한사마리아인법은 도덕과 법의 사각지대를 제거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학살을 외면하는 것은 나쁜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이다. 국가란 선이 바탕 된 공동체이고, 악이란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외교부장관은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 여행금지구역 지정을 거두어야 한다. 형법의 사전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적용되지 않는다. 집단학살이라는 절대 악에 대항한 의용군 지원은, 개인이 마음대로 외국에 대해 전투행위를 한 행위가 될 수 없다. 결국 우크라이나 의용군을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엄포는 국격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행위며, 악을 보고 침묵하라는 잘못된 교훈을 정부가 심는 행위다. 물론 자국민의 보호와 외교문제 발생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정부의 여권법과 사전죄 운운하며 놓는 엄포는 정도를 한참 비켜났다.

굳이 착한사마리아인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돕는 건 인지상정이다. 국가라 해서 뭐가 다르겠는가. 70여 년 전 한국전쟁을 상기해보라. 그때 세계 각국 병사들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이역만리 낮선 땅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정부와 외교부는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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