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의 유쾌한 역전극
꼴찌들의 유쾌한 역전극
  • 최성재
  • 승인 2018.03.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다른 선택은, 현재의 수준에 맞춰 미래의 전망을 냉정히 따져보고 내린 선택은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제자가 못난 스승을 못났다 생각하지 않고 연락하거나 찾아오면, 그것이 설령 일회적이거나 의례적이어도, 못난 스승은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지고 목소리가 밝아지고 어깨가 우쭐해진다. 평생 잊히지 않고 이따금 생각이 나서 혼자 빙긋이, 또는 키득키득 웃는다. 하얀 눈 속에서 붉은 장미라도 발견한 듯이, 어딘가 약간 모자라는 사람처럼 음정도 박자도 제각각인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러다가 아차, 혹시 누구한테 들켰을까, 주위를 휘휘 둘러본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제자들이 다섯 명이나 한꺼번에 졸업한 지 5년인가 6년 만에 찾아온 적이 있다. 신목고 졸업생이었다. 내가 새삼 놀란 것은 두 명은 우리 반이었지만, 나머지는 다른 반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내가 수업조차 들어가지 않은 반의 학생도 있었다.

그해는 이과(자연계) 여학생 반이 두 반 나왔다. 신목고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이과는 대체로 여학생들이 기피하는 편이라 성적이 중상위권이 아니면, 웬만해선 지원하지 않는다. 당연히 여학생 이과반이 남녀 12반 중에 한 반만 나오면, 반평균 성적이 월등하다.

수능이 도입되기 전 학력고사 시절에는 내신을 석차연명부로 제출했는데, 그때는 지금처럼 9등급이 아니라 13등급이었다. 통계의 정규분포(normal distribution)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운데에 가장 많이 몰려 있지만, 양끝으로 갈수록 숫자가 적어진다. 9등급이 가장 보편적이지만(대학에서 A와 A+로 나누는 것도 포함), 13등급(대학에서 A, A+, A0로 나누는 것도 포함)으로 세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표준편차가 클수록, 아름다운 정규분포를 보일수록, 곧 모집단이 60만 명이나 되어서 평균을 따지는 게 무의미한 특수한 수치가 양 끝에 길게 늘어지는 게 당연한데, 중위권은 두터우면서도 상위권에서 변별력이 클수록 좋은 문제인데, ‘쉬운 문제가 좋은 문제’란 해괴망측 정치적 입김(갑질)으로 표준편차를 인위적으로 터무니없이 작게 만든 오늘날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가 정상으로 통하는 일이 태연히 벌어지고 있다.

세계의 인재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대한민국의 인재들이 실력이 아니라 실수로 인생을 결정하는 일이 인재양성이라는 교육적 차원이 아니라 눈앞의 표 계산이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

정규분포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력도 없는 3류 언론의 변함없는 ‘물수능, 불수능’ 호들갑도 교육을 망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우고 있다. 표준편차가 정상적이어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해야, 이론상 200점까지 나올 수 있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150점은 되어야(2018학년도 표준점수 최고점: 국어 134, 수학가 130, 수학나 135), 천재는 구만리 하늘 높이 비상하고, 발달 장애자 또는 공부와 담쌓은 학생은 그들대로 똑같이 존엄한 인간으로서 그에 맞는 교육을 받아 마른 땅을 굳게 딛고 살 수 있다.

13등급 체제에선 1등급이 상위 4%가 아니라 3%다. 따라서 성적을 남녀 따로 계열별 따로 산출하던 때는, 이과 여학생은 아무리 잘하더라도 33명 이하면, 설령 남녀 합해서 전교 1등 하더라도 1등급이 한 명도 안 나왔다.

이전에 34명, 이걸 맞추려고 드러내 놓고 말은 못하고 애썼던 것을 생각하면, 그해에 여학생 이과반이 각각 40명(다른 반은 평균 60명가량)으로 두 반 나왔다는 것은 놀랄 만한 현상이었다. 뭐, 그해는 원하는 대학은 본고사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내신은 별 의미가 없었다만.

'물수능'(?), 언론들의 변함없는 호들갑. 네이버 뉴스 캡처

아무래도 여학생 이과반이 두 반이 되다 보니까, 목동 인근의 다른 고등학교에 비하면 여전히 우수했지만, 선배들보다는 성적이 떨어졌다. 하위권은 문과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 숙녀들은, 꾀꼬리처럼 밝은 목소리로 무척 오랜만에 만난 스승의 팔에 서슴없이 매달린 숙녀들은 바로 그 하위권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늘 몰려다녔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자율학습 시간에 그들은 꼭 붙어 다녔다. 그러고 보니, 한 명은 안 왔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못 왔다며, 다섯 명이 이구동성으로 아쉬워했다.

그날 못 온 학생은 그들과 같이 어울렸으되, 성격이 종달새처럼 밝아서, 나는 이따금, OO은 성적이 오를 일만 남았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성적이 시험 칠 때마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향상되더니, 하위 10%에서 상위 10%로 수직 상승했다. 30여년 교직 생활에서 그런 학생은 유일했다.

미운 오리에서 우아한 백조로 변신한 학생은 수능 성적으로는 능히 연고대급이었지만, 본고사 준비는 따로 못해서 홍익대 수학과로 진학했던 것 같다. 졸업식 날, 백조 학생의 어머니와 서울대 다니던 언니가 찾아와서 고맙다며, 사모님 드리라며 노란 핸드백을 사 주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정원이 늘긴 했지만, 4년제 대학은 지방도 그리 만만찮았다. 신목고도 초창기라 성적이 우수하긴 해도 강남 수준에는 조금 못 미쳤다. 그렇지만 학부모의 학력이 평균 대졸이라 학생들에게 전문대 진학을 권유하는 것은 참 어려웠다. 나는 학생들의 장래를 위해서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로 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그들과 동고동락하는 친구 중에 한 명의 예외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의 예외이고 재수해도 성적이 크게 늘지 않을 거고, 어찌어찌 벚꽃이 여의도 윤중로보다 일주일이나 열흘 먼저 피는 지방의 4년제에 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을까, 체면보다 실속이 낫지 않겠냐며, 차분하게 설득했다.

그러면서 그때 막 신설되기 시작한 IT계열의 전문대를 소개했다. 외국의 사례를 들어가며, 아마 졸업 후에는 서울의 웬만한 4년제보다 나을 거라고, 인생 역전할 수 있다고, 반짝이는 미래의 별로, 미래의 온실에서 겨울에도 탐스럽게 필 장미의 향기로 은은하게 유혹했다.

어찌나 고맙든지, 그들은 부모도 설득하고, 다른 반 학생들까지 끌어들여 ‘새나무 아래에서 결의(新木結義)’했다, 동고동락(同苦同樂)하자! 가즈아~

재잘재잘!

“선생님, 일류대 합격한 애들 있잖아요, 아직 졸업도 못하거나 졸업해도 취직한 애들이 거의 없는데, 우린 바로 다, 몽땅, 한 명도 예외 없이, 전원 취직했걸랑요. 벌써 몇 년 차 되걸랑요. 선생님 말씀이 맞았어요, 호홋! 오늘 점심은 우리가 쏠 거예요.”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건요, 그동안 못 찾아뵈어 죄송해요. (글썽글썽) 선생님, 용서해 주실 거죠? 저하고 얘하고 둘이서 특허청에 취직했는데요, 이번 여름에 특허청이 대전으로 이사 간답니다.

이제 서울을 떠나면, 찾아뵙고 싶어도 그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선생님 얼굴 한 번 보고 가려고 선생님이 활짝, 음, 이런 말해도 되나, 귀엽게 웃는 모습을 꼭 보고 가려고 온 거예요, 헤헤.”

사랑한다고, 말로는 못하더니, 헤어져 몇 발짝도 안 가서, 사랑하는 내 제자들이 일제히 두 팔을 올려 5월의 싱그러운 하늘에 하트를 뿅뿅뿅 그렸다. 나도 가방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엉성한 자세로 따라했다.

◇ 필자 최성재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전 영어교사
문화·교육평론가

csj@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