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대출 총량 규제' 풀고 낙하산 인사 관행 사라져야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10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부동산 자금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불어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1000억원으로 1월 말보다 1000억원 줄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석 달 내리 줄어든 것은 한은이 2004년 관련 통계 속보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연합
금리 상승과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은행권 가계대출이 줄어드는 가운데 10일 서울의 한 은행 앞에 부동산 자금 대출 관련 현수막이 불어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1000억원으로 1월 말보다 1000억원 줄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석 달 내리 줄어든 것은 한은이 2004년 관련 통계 속보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연합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7월 발표한 ‘가계부채 현황 분석 및 시사점’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는 1936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섰다.

가계부채의 증가 속도 역시 전년 대비 9.5%로 주요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DP의 3배, 민간소비의 5배 가까운 속도로 늘어나며 거시건전성을 악화시켰다.

이 때문에 가계부채는 ‘단군 이래 최대’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한국경제의 ‘지뢰’로 인식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관리, 즉 대출 규제에 나선 명분도 바로 이것이다.

올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는 지난해의 6%대보다 강화된 4~5% 선이다. 이의 일환으로 금융당국은 지난달 14일 가계대출을 더욱 옥죄는 조치를 내놓았다.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을 소득대비대출비율(LTI)로 통합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가계대출 규제를 피해 개인사업자대출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다.

금융당국은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역시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DSR은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유가증권담보대출 등 모든 가계대출의 원리금 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말한다. DSR 40%가 적용된다는 것은 연소득의 40%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대출 한도를 규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전방위 규제는 사상 처음으로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 3개월 연속 감소라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1000억원 줄었다. 앞서 지난해 12월과 올들어 지난 1월에는 각각 2000억원, 5000억원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1일 대출 규제와 관련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질의서를 보냈다. 질의서에는 현재 시행 중인 가계대출 총량 규제 목표율의 산정 근거, 이유, 권고하는 근거 법령, 은행에 보낸 공문 등을 묻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당국은 근거 법령이 없고, 도덕적 권유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주변에서는 자의적인 대출 규제를 정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금융당국이 최소한의 법적 근거나 규정도 갖추지 않고 원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관행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윤 당선인의 의지가 강하다. 윤 당선인은 유세 기간 동안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두고 "전형적인 문재인표 무대포, 이념형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처음으로 3개월 연속 감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대출 규제 강도가 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대출 절벽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저신용자는 물론 서민도 높아진 은행 문턱으로 벼랑 끝에 몰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특히 집값 급등기에 소외된 무주택자들은 대출 한도가 줄어들 때마다 "사다리 치우기 아니냐"는 불만을 쏟아낼 수 있다. 윤 당선인이 대출 규제 완화를 공약으로 내놓은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더욱 큰 문제는 관치금융(官治金融)의 어두운 그림자다.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만회할 수단으로 대출 규제가 이용됐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실제 전문가들은 문 정부 5년 간 공급 규제로 집값이 크게 뛰었고, 이를 수요 측면에서 억누르려다 보니 대출 규제를 동원하게 된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위기 요인은 맞다. 하지만 수요 억제 위주의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상환 능력에 맞춰 돈을 빌리고, 미리 약속된 일정에 따라 원리금을 꼬박꼬박 갚을 수 있도록 하는 금융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각종 지원사업을 펼치면서 은행 자금을 ‘쌈짓돈’처럼 쓰는 관행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의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무려 2년 넘게 이어지고, 연 10%의 고금리 혜택을 준다는 청년희망적금을 위해 은행 돈이 투입되는 게 대표적이다.

금융권의 낙하산 인사 관행도 새 정부에서는 근절돼야 한다. 물론 과거 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는 있었다. 하지만 문 정부처럼 정당이나 캠프 출신 인사들을 전문성, 경력까지 무시해가며 노골적으로 내려보낸 사례는 없었다. 전방위적 낙하산 인사는 금융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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