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초대 총리 지명 오히려 '축복'이 되게 하라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尹 내각 '협치 총리' 절실
국힘도 승자의 배려로 대승적 경쟁구도 만들어 가야
김부겸 유임·김성재 DJ도서관장 등도 혁신 카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당선 이후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인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마친 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당선 이후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서울 남대문 시장을 찾아 상인회 회장단과 간담회를 마친 뒤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당선인에게 새 정부 구성은 ‘발등의 불’이다. 취임식까지는 불과 57일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니 거대 야당이 될 현 여당과의 소통과 통합부터 꾀해야 조각(組閣)의 실마리를 붙들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대통령 취임 후 여소야대의 높은 벽으로 국정의 교착과 파행은 불가피하다.

초대 국무총리에는 국민 다수를 대표할 ‘국민 총리’를 선정해야 한다. 그런 인물을 찾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다. 국회의원 295명 중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으로 압도적이다. 민주당 성향 무소속까지 합치면 180석 가깝다. 민주당의 반대를 피해나갈 사람을 물색하기는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거부(비토 Veto)를 무릅쓰려다간 국정 파행이 불가피하다. 1998년 2월 출범한 DJP 연합정권 때 JP는 총리 서리 딱지를 5개월 넘게 붙였다. 윤 당선인은 여소야대 국면을 감안해 총리를 엄선하는 신중함을 발휘해야 한다. 거부감이 덜한 사람 중 인품과 국정 총괄, 갈등 조율까지 해낼 능력자라야 한다.

먼저 DJ 정부 때 민정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기념도서관장을 꼽을 수 있다. 신학자로 한신대 교수 출신이다. 그는 한신대 다닐 때부터 후배들과 빈민운동으로 잔뼈가 굵었다. 고 김재준 목사가 일찌기 DJ의 정치적 잠재력을 알아보고 수제자 김 관장을 DJ에게 보낸 바 있다.

한쪽 다리의 불편을 딛고 기독교 학생운동 빈민운동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신망을 쌓았다. 그런 재야와 운동권 네트워크가 김 관장이 지닌 큰 강점이다. 동교동 좌장 권노갑 고문이나 DJ 차남 김홍업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과도 두루 친분이 두텁다. 민주당 원로급들도 김 관장에게는 거부감이 없다.

민주당의 비토를 받지 않고 인품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을 구하긴 참 힘들다. 조선일보는 14일자에 ‘김부겸 총리 유임 검토’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검토한 일 없다"는 인수위 해명에도 김부겸 카드는 여전히 꿈틀거린다. 당선인 측 누군가의 아이디어인 모양이다.

이 기사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청와대는 내심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여야는 찬반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아직은 말도 안 된다는 반대론이 거세다. 원희룡 인수위 기획위원장만 쌍수를 들어 공개적으로 찬성이다.

윤 당선인의 정치 멘토 중 한 명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 역시 그런 구상을 흉중에 품고 있었다고 한다. 이심전심으로 뭔가 오고갔을까? 정치는 생물이다. 죽은 돌이 살아나듯 불가능할 것 같던 카드가 살아날 때도 있는 법이다. 민주당의 몽니로 총리 지명이 힘들 듯하면 김부겸 카드는 언제든지 되살아날지 모른다.

법조인이나 서울법대 출신 같이 당선인와 중복되는 사람은 가능한 피해야 한다. 그러니 총리추천위에서 후보군을 물색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3배수 후보자를 구하지 못해 답답해 한다는 후문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적대감이 엄청나다. 유인태 전 의원이 "대 국민 사기를 쳤다"고 말할 정도다.

초대 총리를 내정해야 후속 조각에도 속도를 낼 수 있다. 탄핵 여파로 정권을 줍다시피한 문 정권은 당선 후 5일만에 총리를 지명했다. MB는 40일, 박근혜 때는 김용준 총리 내정자가 중도 낙마해 51일 걸렸다. 나라 안팎의 상황을 감안하면 총리 지명과 조각에 속도를 더 낼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은 24만표(0.73%) 차의 피말리는 접전 끝에 승리했다. 당선인이 가장 신경 써야할 초미의 과제는 ‘국민통합’일 것이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앙금과 후유증부터 우선 털어내야 한다. 보수우파와 진보좌파의 극한 대치뿐 아니라 지역·세대·계층 간 반목까지 치유할 필요가 있다.

윤 당선인이 ‘협력의 정치’를 선언할 필요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총리 지명이 힘든 상태일 수 있다. 그러면 내각 구성이 어려워지게 된다. 인준(국회 동의)이 필요한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견제는 불 보듯 하다. 장관이야 인사청문회를 거치면 되지만 역시 진통이 따를 것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안 통과도 힘들 거다. 정부나 소수파 여당이 민생 법률을 발의해도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선 때 사생결단하듯 싸운 적대감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쉽게 협조하지 않을 거다.

그러나 민주당이 덩치 자랑으로 사사건건 발목을 잡으면 부메랑을 맞게 된다. 새로 출범할 정부를 괴롭히느라 국정 난맥상이 심해지면 민주당에 대한 비난도 거세진다. 윤 당선인 취임식 20일 뒤 6·1 지방선거가 있다. 민주당이 다시 참패하면 끝장이다.

정치 스케쥴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힘 자랑이 지속될 순 없다. 그렇다고 쳐도 국민연합 정부를 표방한 윤 당선인이 통합에도 신경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안보와 경제, 코로나까지 ‘3각 파도’를 극복할 수 없다. 정권교체를 해본들 나라의 미래가 여전히 캄캄한 안개 속이라면 국민만 절망한다.

문 정권의 인사 잘못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취임사) 다짐과는 달리 탕평인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국회의원 측근들을 장관에 도돌이표로 앉혔다. 4년여,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장관급 33명의 임명을 강행했다.

인사청문회에는 ‘친노 인사’ 아니면 ‘대선 공신’, ‘친문 측근’들만 나와 ‘회전문 내각’이라는 비웃음을 샀다. 86운동권과 진보좌파 시민단체들로 주류 세력의 교체를 꾀한 셈이다. 요직을 가장 많이 차지한 대학이 ‘참여연대’라는 아재개그까지 나돌았다. 보은인사, 캠코더인사 혹평이 인사 때마다 나왔다.

대선은 ‘총성 없는 전쟁터’다. 공을 세운 측근이나 핵심들을 챙기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이유다. 측근이 호가호위하면 유능한 인재가 일할 공간은 줄어든다. 윤 당선인이 "능력과 적재적소 인사"를 강조한 것은 뜻이 깊다. "이번 기회에 측근정치의 함정과도 단절하라"는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힘은 패배한 민주당에 겸손한 배려를, 패자 역시 승자에게 승복과 협조를 하는 마음가짐이 절실하다. 초당적으로 대한민국이 처한 미증유의 위기를 극복해나갈 동반자로 ‘협력의 정치’라는 대의에 동참하라. 그렇게 선의의 경쟁을 하는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야만 한다. 그래야 민주당에도 부활의 계기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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