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고차 시장 진출을 위한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업계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연합

대기업의 진출이 제한됐던 중고차 매매업의 전면 개방 여부가 이르면 이번 주중 판가름 난다.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장 개방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태다. 이에 현대차·기아, 한국지엠(GM) 등 완성차 5사도 별도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사업계획 로드맵을 마련하는 등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14일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이달 중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재지정과 관련한 중소벤처기업부의 2차 심의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위원들을 대상으로 이달 17일 회의 참석 여부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주 안에 결론이 도출될 수도 있다.

이번 회의에서 재지정이 이뤄지면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은 좌절된다. 반대의 경우 수입차에 이어 국산차도 중고차 시대가 활짝 열린다.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매매업 도전은 중고차 매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해제된 2019년 2월 시작됐다. 당시 중고차 매매업계는 대기업의 독과점으로 중소업체가 괴멸할 수 있다며 재지정을 신청하고 강력히 저항했다. 이후 양측의 날 선 대립이 이어지며 끝내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법적 결정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앞서 지난 1월 14일 열린 1차 회의에서도 중고차 시장 선진화, 소비자 선택권 확대를 앞세운 완성차업계와 골목상권 침해라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팽팽한 견해차만 확인한 채 최종 결정을 2차 회의로 미뤘다.

현재 완성차업계는 심의위원회가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재지정 신청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사전심의 역할을 맡은 동반성장위원회가 이미 재지정 부적합 의견을 중기부에 보냈기 때문이다. 산업 규모가 30조원 수준으로 커진 데다 소비자 편익과 선택권 확대 관점에서도 시장 개방이 옳다고 본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지금껏 중기부 심의위원회가 동반성장위원회의 결정을 번복한 적은 한 번도 없다"며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규제 혁파를 공언한 윤석열 당선인이 대선에서 승리한 것도 기대를 높이는 부분"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완성차업계의 최근 행보는 자신감이 넘친다. 첨병은 현대차·기아다. 양사는 지난 1월 20일 각각 경기 용인과 전북 정읍에 자동차매매업 등록을 신청하며 중고차 시장 진입을 공식화했다. 이어 이달 7일에는 세부 사업 방향을 담은 로드맵을 공개했다. 5년·10만㎞ 이내 자사 차량 대상의 중고차 출시, 기존 차량 매입 후 신차 구매시 할인 혜택 제공, 시세 결정의 투명성 제고와 허위·미끼 매물 근절을 위한 ‘내차 시세’ 서비스, 인공지능(AI)·가상현실(VR) 기반 온라인 전시·판매 플랫폼 운영 등이 골자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와의 상생안도 제시했다. 올해 2.5%, 2023년 3.6%, 2024년 5.1%로 시장점유율을 ‘셀프 제한’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기존 업계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과거 합의 과정에서 제시했던 초기 3년 간 시장점유율 목표치(5%→7%→10%)를 절반가량 대폭 낮춘 것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이를 바탕으로 2026년 기준 완성차 5사의 예상 시장점유율이 7.5∼12.9%에 불과하다는 전망을 내놓으며 완성차업계에 의한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의 괴멸 주장을 일축했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들도 반색하고 있다. 기존 중고차 시장에 만연하고 있는 허위·미끼 매물, 강매, 성능 조작 등 불법행위로 인한 소비자 피해와 불신을 근절시킬 단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 평가도 호의적이다.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로 일부 개인사업자의 피해는 불가피하지만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의 신뢰 상승으로 신차와 중고차 시장 모두 동반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면 시장 규모가 현재 30조원에서 2025년 50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 김 교수는 "전체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 업체에도 상당한 낙수효과가 일어날 것"이라며 "소비자 편익을 무시한 채 대기업에 골목상권 침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행태는 기존 중고차 매매업계에게도 좋지 않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이어 "개인사업자 중심이었던 중고차 시장의 기업화·시스템화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며 "시장 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야 커진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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