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13)
(좌승희)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13)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4.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유일보는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 동반성장의 경제학(2018년 2월 기파랑 출판)⟫을 연재합니다. 자유일보 애독자들에게 대한민국 경제의 본질적 고질적 병폐인 저성장과 양극화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13>성과 무시 경제적 평등 추구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

제1장 저성장과 양극화의 원인; 자본주의가 문제인가

제2장 경제발전의 일반이론: 자본주의 경제발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제3장 정치경제체제 유형과 경제발전의 역사적 경험

제4장 세계 경제문제의 원인과 동반성장 친화적 정치경제체제의 모색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성과제 폐지 시위.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성과제 폐지 시위. 연합뉴스

1. 오늘날 세계 경제난국의 원인: 평등민주주의 정치경제체제

이제 왜 전 세계 경제의 장기 정체와 양극화의 원인이 평등주의 정치경제체제에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지적한 대로 전후 60년 이상 인류가 추구해 온 정치경제체제의 이상과 제도와 정책의 기조가 ‘경제적 평등’이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가? 오늘날 지구상의 어느 민주주의가 “경제적 불평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시장의 신상필벌의 차별화 기능에 역행하는 경제제도와 정책을 양산해 온 사회민주주의의 이상 혹은 체제가 바로 오늘날 경제난국의 원인인 것이다.

오늘날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불평등 심화의 원인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발연대 이후 한국경제가 추구해 온 좋은 성과는 폄하하고 나쁜 성과를 우대하는 평등주의 정책 패러다임이 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앗아간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만 배려하고, 수도권은 규제하고 지방만 배려하고, 열심히 살아 성공하는 사람보다도 어려운 사람만 배려하겠다는 균형과 평등발전의 이념은 신상필벌의 발전 원리에 역행할 수밖에 없다. 성과에 관계없이 평등이 보장되는 순간, 혹은 보상이 성과에 미흡해지는 순간 개인과 기업의 성장동기는 사라지고, 성장이 정체되면 일자리 창출은 안 되고 중산층이 무너지면서 양극화는 심화된다. 복지, 사회 정책이 필요하나 자조 노력과 성취에 따른 신상필벌의 인센티브 차별화가 없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취약계층의 자조정신과 성장발전의 동기를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실패하는 복지가 이를 방증한다.

성과 무시는 정체의 길
성과 무시는 정체의 길

‘일반이론’에 따르면 성과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은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성과를 무시한 경제적 평등의 추구는 경제정체의 충분조건이다. 발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성과의 차이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은 마르크스의 주장처럼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을 보다 나은 번영된 세상으로 이끄는 동기부여 장치이다. 이에 따르면 오늘날의 성장 정체와 양극화 현상은 바로 전후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경제적 성과를 무시한 반 신상필벌의 평등주의 경제정책체제가, 개인과 기업과 사회로부터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앗아간 때문이다. 성과를 중시하지 않는 사회는 결코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없음이다. 성장의 유인을 잃고 경제 하향평준화로 가는 사회는 중산층이 소멸되면서 불가피하게 양극화에 직면한다. 그래서 경제적 평등의 보장은 동반성장의 안티테제이다. 공자의 ‘동이불화(同而不和)’와 좌구명의 ‘동즉불계(同則不繼)’의 경구를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정치체제의 개념 재정립해야

평등민주주의 정치경제체제가 오늘날 세계는 물론 한국경제의 저성장, 양극화를 초래하는 원천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그럼 이제 정치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정치체제의 개념과 평가기준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정치는 경제를 배제한 체 그 자체만으로서 평가될 수 있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경제가 잘되어 국민생활이 풍족해지고 안정되도록 하기 위해 선택될 수 있는 국가운영의 수단이 정치제도이다. 특정 민주주의가 지고(至高)의 선일 수도 없다. 다양한 형태의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고 국가의 목표에 따라 그 내용을 달리하는 민주주의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민주주의도 비민주주의(예컨대 독재나 권위주의)도 정치권의 이해관계 속에서, 그들의 관점에서 정의되어 왔다. 정치인들의 관점이 아니라 국민들의 관점에서 정치체제가 정의되어야 한다. 지금의 민주와 비민주의 정의는 정치시장에서 권력을 얼마나 쉽게 경쟁을 통해 쟁취할 수 있느냐, 다른 말로 권력에 의해 국가자원을 자의적으로 배분할 수 있는 ‘특권’을 얼마나 쉽게 쟁취할 수 있느냐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특권을 오래 독점하는 체제는 비민주적, 자주 교대해서 특권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체제는 민주적이라고 정의하는 셈인 것이다. 서로 쉽게 특권을 나눌 수 있을수록 민주적이라 하는데, 필자의 귀에 이 말은 담합 체제가 좋다는 뜻으로 들린다.

만일 정치체제를 국민의 경제적 번영 측면에서 재정의한다면 정치적 관점에서의 분류와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치체제를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정치와 그렇지 않은 정치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민주주의라 하더라도 그 기능이 경제발전에 장애가 된다면 이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치체제는 그 자체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국민의 경제적 삶의 향상과의 연계 속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면 경제발전 친화성 혹은 동반성장 친화성 여부가 정치체제 선택의 제1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앞 제3장에서 분석한 4가지 유형의 정치경제체제 중에서는 ‘차별화권위주의’와 ‘차별화민주주의’가 경제발전 친화적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체제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물론 각국의 처한 구체적 역사, 문화, 국민의 정치적 성숙도, 경제발전 정도 등의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