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망 사용료 지급 여부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지난 16일 열린 1차 항소심 변론이 SK브로드밴드의 우세로 마무리된 가운데 5월 18일로 예정된 2차 변론 기일에 넷플릭스가 어떤 반전 카드를 들고나올지 주목된다. /게티이미지
인터넷망 사용료 지급 여부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소송전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지난 16일 열린 1차 항소심 변론이 SK브로드밴드의 우세로 마무리된 가운데 5월 18일로 예정된 2차 변론 기일에 넷플릭스가 어떤 반전 카드를 들고나올지 주목된다. /게티이미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와 콘텐츠 제공업체의 역학관계를 근원적으로 바꿔놓을 세기의 법정 싸움이 2라운드에 돌입했다. 인터넷망 사용료를 둘러싼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의 소송전 이야기다.

SKB가 최종 승소할 경우 넷플릭스·유튜브·디즈니플러스 등 다국적 멀티미디어 플랫폼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사 소송이 줄을 이을 수 있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서울고등법원 제19-1민사부에서는 넷플릭스와 SKB의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항소심 1차 변론이 진행됐다. 양측은 20분간의 구두 변론 동안 1심 때와 마찬가지로 각자의 논리를 앞세워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맞섰다.

양사의 갈등은 지난 2018년 SKB가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 지급을 요청하며 시작됐다. 넷플릭스가 SKB 망으로 데이터를 전송해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트래픽의 과도한 증가로 망 증설비용 등 손실이 크다는 점도 피력했다. SKB에 따르면 2018년 5월 50Gbps 정도였던 넷플릭스 트래픽은 2021년 9월 현재 1200Gbps로 24배 폭증했다.

넷플릭스는 SKB 요구를 거부하며 2000년 4월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즉각 항소했다. 이날 항소심에서 넷플릭스는 "SKB 이용자에 대한 콘텐츠 전송 의무는 SKB에게 있다"며 "망 이용료는 그 의무를 콘텐츠 제공업체에 전가하는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SKB의 망 제공은 SKB와 SKB 이용자와의 계약에 따른 것일 뿐 넷플릭스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자사가 이용 중인 전 세계 7200여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가운데 망 이용료를 요구한 것은 SKB밖에 없음을 거론하며 "이는 일종의 ‘통행세’를 내놓으라는 부당행위"라는 주장도 되풀이했다.

특히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 어플라이언스(OCA)’와 ‘빌앤킵(Bill and keep)’을 새로운 핵심 쟁점으로 내세웠다. OCA는 넷플릭스가 무상 제공 중인 솔루션으로 가입자들이 볼 콘텐츠를 예측해 각 국가의 로컬 서버에 미리 저장해 놓는다. 이를 활용해 망 증설을 최소화할 수 있음에도 SKB는 이를 거부한 채 금전적 대가만 요구한다는 것이 넷플릭스의 주장이다.

또 빌앤킵은 양측이 등가(等價)의 가치를 제공할 때 물물교환하듯 서로의 비용을 ‘퉁치는’ 무정산 원칙이다. 이날 넷플릭스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와 콘텐츠 업체는 상호 윈윈 관계인 만큼 빌앤킵을 적용해 각자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것이 인터넷 세계의 기본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SKB는 두 쟁점 모두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다. SKB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세종의 강신섭 변호사는 "OCA를 도입하면 트래픽은 줄겠지만 서버를 둘 공간의 임대료와 전기료 등 상당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며 "넷플릭스가 이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 조삼모사 격의 무의미한 조치"라고 밝혔다.

빌앤킵 역시 인터넷의 기본이 아닌 SKB·KT·LG유플러스 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끼리의 정산 방식이라고 일축했다. 김 변호사는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사이라도 서로 주고받은 트래픽과 수익이 비슷할 때나 적용되는 원칙을 왜 들고나왔는지 의아할 정도"라고 말했다.

현재 법조계는 항소심의 첫 대결은 SKB의 우세로 끝났다고 평가한다. 넷플릭스가 재판부를 설득해 1심 판결을 뒤집을 이렇다 할 무기를 꺼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콘텐츠 제공업체의 인터넷망 무임승차를 끝내야 한다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넷플릭스에게는 악재다. 실제 지난달 14일 보다폰·도이치텔레콤 등 유럽 통신사들은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콘텐츠 사업자가 망 투자비를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1일 750여개 통신사업자가 가입한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도 콘텐츠 사업자들이 공동 펀드를 조성해 망 투자비를 분담해야 한다는 선언을 공표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거대 멀티미디어 플랫폼의 등장 이후 망 이용료 문제는 전 세계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들의 공통된 고민이자 불만 사항"이라며 "GSMA의 선언이 분수령이 돼 각국에서 공론화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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