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공산주의 본질 꿰뚫어···절대타협불가
이승만, 공산주의 본질 꿰뚫어···절대타협불가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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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父 이승만 탄신 143주년(5)

<편집자 주>

2018년 3월 26일은 국부(國父) 이승만 대통령 탄신 143주년 되는 날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 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기려야 하는가?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그 건국정신을 만든 이가 이승만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자유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마치 70여 년 전 자유대한민국을 반대했던 ‘무장봉기 세력’처럼 우리 헌법에서 최고가치인 ‘자유’를 지우려 하고 있다. 이 시기 이승만의 자유사상을 재조명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이런 취지에서 본보는 ‘國父 이승만 탄신 143주년’을 7회로 나누어 연재한다.

1954년 이승만 미 의회 연설

[글 마이클 리 전 CIA 대북정보관]

<5>이승만, 공산주의와 타협 절대불가, 본질 꿰뚫어

◇이승만 대미외교 성과

미국은 과거에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할 때 특별예산이나 추가예산을 책정하지 않고 예비비를 사용하면서도 충분히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6.25전쟁 때에는 특별예산을 책정하였다. 그 돈으로 전후복구 사업과 10년간 구호물자를 풀어 한국경제를 지원하였다. 이는 분명히 이승만의 대미외교의 결실이다.

북한이 6.25남침을 하였을 때, 트루만 대통령에게 한국 파병을 강력하게 건의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그 한사람이 맥아더 원수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 하였다. 또 한사람은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역임하게 되는 존 포스터 덜레스였다. 그는 “미국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한민국을 공산주의 침략에서 구출해야 한다”고 역설 하였다.

덜레스는 이승만과 조지워싱턴 대학교에서 기숙사의 같은 방을 사용한 동창생이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을 같이 쓴 끈끈한 친구다. 이승만의 정치철학 기조는 친미외교이며 반공투쟁이다.

이승만과 덜레스
이승만과 덜레스

◇일찌기 공산주의의 본질 꿰뚫어, 절대 타협 불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 소비에트 연방이 형성되었을 때, 미국을 위시한 세계 어느 나라도 공산주의의 모순과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승만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와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다는 확실한 입장을 고수 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자유를 일당독재가 몰수하고 일당독재는 일인수령숭배로 유지되는 것이 공산주의의 본질이라고 역설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때가 되면 반드시 망한다고 예언하였다. 그런데 건국한지 7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얼간이들이 대한민국의 기반을 흔들고 괴롭히고 있다.

이승만이 상해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있을 때, 임시정부는 소련으로부터 200만 루불의 재정지원을 약속받고 그 일부가 유입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이 상해임시정부가 타국의 경제지원을 받은 유일한 경우이다. 그 때 임시정부 요인들의 절반 이상이 친소성향의 인사들이었다. 이승만은 절대로 그 돈을 받지 말라고 강력하게 제동을 걸었다.

고르바초프와 노태우
고르바초프와 노태우

◇공산주의는 인간의 존업성 인정안해

그리고 1923년에 <공산당의 당부당>이란 논문을 썼는데 이것이 공산당의 정체를 비판한 세계 최초의 반공 논문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논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공산주의 이론의 핵심은 모든 소득과 자산의 평등분배다. 평등분배는 생산성 경쟁과 창의를 저해하고 결국은 문명발전을 파괴하며 인간은 영혼과 생명이 없는 독재자의 소지품으로 변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 1989년에 소련의 최고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연설에서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외쳤다. 이승만 박사와 거의 동일한 공산주의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이승만 보다 66년 뒤늦게 그가 공산주의 모순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소련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면서 2000만 명이 아사하고, 중국에서는 3800만 명이, 북한에서는 300만 명 이상이 굶어죽었다. 소련이 그리스와 터키를 침략하고 위성국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알게되고, 1947년 3월 12일에 <트루만 독트린>을 선포될 때까지 미국도 이승만 만큼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이승만은 30년 전에 벌써 그 일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 정부까지도 좌우합작의 함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건국 직전 남북합작 국론이 국내이서 춤추고 있을 때, 미국 군정청은 그것을 묵인하고 있었으며, 이승만이 절대 반대의 입장을 고집할 때 군정장관 하지중장은 이승만을 고집 세고 골치 아픈 늙은이라고 미워하며 그를 한 달 간 가택 연금시킨 사례도 있었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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