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달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합동 점검회의를 개최,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에 따라 불확실성이 확대된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등을 금융감독원·국제금융센터와 함께 점검하고 있다. /연합
고승범 금융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달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시장 합동 점검회의를 개최,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에 따라 불확실성이 확대된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등을 금융감독원·국제금융센터와 함께 점검하고 있다. /연합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정부의 금융감독체계는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등으로 분리돼 있었다. 신용관리기금은 1982년 12월 제정된 신용관리기금법에 따라 종합금융회사 및 상호신용금고의 경영부실로 인한 예금자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이같은 금융감독체계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1997년 12월 제정된 금융감독기구 설치법에 따라 이듬해 4월 금융감독위원회, 그리고 1999년 1월 금융감독원이 출범했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이헌재 전 부총리는 금융감독원장을 겸임하면서 국내 금융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같은 금융감독체계는 순항하지 못했다. 2000년 말 상호신용금고 부정대출에서 비롯된 ‘진승현·정현준 게이트’와 2003년 ‘카드사태’ 등 권력형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면서 금융감독체계가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관치금융의 상징이자 적폐로 간주됐다.

정부는 태스크포스(TF) 등을 꾸려 금융감독위원회를 폐지하고 금융감독 권한을 분산하는 취지의 개편안을 만들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구(舊)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금융위원회를 만들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을 두는 개편안이 현실화됐다.

금융위원회는 정부 조직이지만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원회 산하의 민간 조직이다. 예산은 세금이 아닌 금융회사들이 출자하는 분담금으로 충당하며, 임직원 역시 민간인 신분이다. 서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기관인데도 분리해 놓은 것은 이유가 있다. 정부 조직인 금융위원회가 감독 업무를 직접 맡을 경우 정부가 금융회사를 좌지우지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저축은행 사태(2011년), 동양종금증권 사태(2013년), 사모펀드 환매중단(2019년) 등 대형 금융사고가 끊이지 않은 것이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금융정책 기능과 금융감독 권한을 모두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감독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이로 인해 대형 금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금융은 기획재정부, 국내금융은 금융위원회가 나누어 맡고 있는 것 역시 금융정책의 일관성을 해쳐 정책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국민의힘이 내놓은 20대 대선 공약집에는 금융감독체계의 개편은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금융감독체계 개편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행정부를 기능 중심으로 슬림하게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만큼 금융감독체계 역시 14년 만에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윤 당선인의 경제·금융 공약을 맡았던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 해체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내금융 정책에 관한 사무를 기획재정부로 이관함으로써 기획재정부가 금융정책의 수립·총괄·조정에 관한 사무를 통합적으로 수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성 의원은 또 ‘금융감독원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 권한을 금융감독원으로 이관하고, 금융감독원 안에 금융감독 및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최고의사결정기구로 금융감독위원회를 두자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는 사실상 금융위원회의 해체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같은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선거철마다 등장한 단골 메뉴였던 데다 향후 감독당국 비대화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정부 역시 금융감독체계를 개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에는 흐지부지된 전례도 있어 이번에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인 것이다. 시스템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운영 방식의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과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소상공인 금융지원, 서방 국가들의 러시아 금융제재 등 당면한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금융위원회가 발빠른 대응에 나서야 하지만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란에 따라 자칫 현안 이슈를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혼선만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분리는 개념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을 인위적·임의적으로 구분할 경우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간 책임회피 등 금융행정의 책임성만 약화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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