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우리의 생명선
이승만 ‘한미상호방위조약’, 우리의 생명선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3.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國父 이승만 탄신 143주년(7)

<편집자 주>

2018년 3월 26일은 국부(國父) 이승만 대통령 탄신 143주년 되는 날이다.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 왜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기려야 하는가?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그 건국정신을 만든 이가 이승만이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자유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마치 70여 년 전 자유대한민국을 반대했던 ‘무장봉기 세력’처럼 우리 헌법에서 최고가치인 ‘자유’를 지우려 하고 있다. 이 시기 이승만의 자유사상을 재조명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이런 취지에서 본보는 ‘國父 이승만 탄신 143주년’을 7회로 나누어 연재, 성원에 감사를 드리며 오늘 그 마지막 회를 내보낸다.

아이젠하워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한 대가로 이승만의 휴전 동의를 얻어 냈다.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을 영접하는 아이젠하워와 닉슨. 대통령 기록관
아이젠하워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약속한 대가로 이승만의 휴전 동의를 얻어 냈다.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승만을 영접하는 아이젠하워와 닉슨. 대통령 기록관

[글 마이클 리 전 CIA 대북정보관]

<7>한미동맹, 대한민국을 살린 이승만의 최대치적

북한의 6.25남침(1950/6/25) 후 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때에, 오래 끌면 자기들에게 불리할 것을 예상한 공산진영에서 제안한 휴전협상이 1951년에 시작이 되었지만, ‘휴전 절대반대 북진통일’을 주장한 이승만의 고집으로 협상이 장장 2년간이나 지속되었다.

휴전이 체결되기 전부터 이승만은 미국 측에 제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 측의 미온적인 태도로 아무런 확실한 기대를 할 수 없을 때, 이승만은 미국의 기를 꺾기 위하여 기상천외한 발상을 하게 되었다. 휴전체결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반공포로석방’이 바로 그것이었다.

반공포로석방
반공포로석방

◇세계를 경악케 한 반공포로석방, 한미동맹 위한 전략

이승만은 헌병사령관 원용덕에게 포로수용소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던 미군과 UN군을 기습하여 반공포로들을 탈출시키라고 명령하였다. 1953년 6월 18일 이 작전이 시행 되었고, 부산, 마산, 대구, 영천, 논산, 광주, 부평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2만6900명의 반공포로가 탈출하는데 경비병들의 반격으로 61명이 사살되었고 116명이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반공포로가 아닌 8200명은 계속 수용소에 잔류하였다. 이 엄청난 사건으로 미국과 UN 참전국들이 충격을 받았고, 미국 측에서는 한반도에 전쟁이 진행 중인 와중에 이승만 제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이승만은 미국과 전 세계에 호소하였다.

“공산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하는 우리가 공산주의가 싫다고 애걸하는 포로를 다시 사지의 공산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다. 나는 우리민족을 사랑하는 대통령으로서 반공포로석방을 지극히 당연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반공포로석방. 석방된 포로들을 격려하는 이승만 대통령
반공포로석방. 석방된 포로들을 격려하는 이승만 대통령

이 소식을 들은 미국 정부는 당황하였고, 미국 국내에서는 기독교 교계에서 이승만 지지성명을 발표하고 학계에서는 이승만을 위대한 인간이라고 치하하였다. 이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마음을 바꾸고 휴전 이후 미국이 대한민국을 등한히 할 것이라는 적들의 오판을 막기 위하여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조속히 마무리 할 것을 지시하였다. 그 결과,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성립된 후, 서둘러서 1953년 10월 1일에 이 조약이 체결되었고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특히 공산국가들이 인접해있는 극동지역에서는 대한민국의 생명선이다. 이 위업을 이승만이 구축하였다. 이승만의 반공국시, 친미외교, 기독교 복음을 건국이념의 기초로 삼은 그의 신념과 정치철학, 빵이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는 그의 경제개념, 그분은 참으로 우리 현대사의 선지자였다.

한국과 같은 밑바닥의 약소국이 미국과 같은 강대국과 동등한 자격으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 했다는 것은 이승만의 위대한 카리스마와 인간적 비중이 미국의 국력과 대등한 역할을 하였다는 말이 된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 국빈 방문 중 미 의회에서 연설 중인 이승만 대통령(1954. 7. 28)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 초청 국빈 방문 중 미 의회에서 연설 중인 이승만 대통령(1954. 7. 28)

6.25전쟁 휴전 직후 1954년 7월 28일, 미국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때 이승만을 세계적인 정치가로 전략가로 존경하는 정치인들, 학자들, 교수들, 외교관들, 군인들, 시민들이 입추의 여지가 없도록 국회의사당에 모여들었다. 40분간 연설하면서 그는 무려 33번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한 말이, “나는 우리나라를 지켜준 미국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을 아낌없이 죽음의 한국 전선에 보내준 미국의 모든 어머니들에게 특별히 감사 한다.(My special thanks to all American mothers.)” 이때 모든 청중들이 울었다.

나는 이 글을 끝내며 독자들에게 호소한다. 이것이 한국과 미국과의 관계이며, 이승만이 결속한 한미동맹의 진가와 위대함을 재평가 해주기를 원한다. 이토록 위대한 건국대통령을 아직도 국부로 모실 생각이 없는 인간들에게 호소한다. 기도하면서 당신들의 존재이유를 생각해 주기 바란다.

jayooilbo@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