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의 핵심 원자재인 유연탄의 수급불안이 가중되면서 주요 시멘트업체들의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달 남짓한 것으로 알려진 유연탄 재고마저 동이 나면 시멘트 공급 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20일 서울의 한 레미콘 공장. /연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서방 국가들의 대(對)러시아 제재 강화로 국제 원자잿값 급등과 글로벌 물류난이 가속화되면서 건설업계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휩싸였다. 핵심 원자재인 철근콘크리트와 시멘트의 공급단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데다 재고까지 바닥을 드러내 자칫 건설현장이 올스톱될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건설비 상승으로 인한 분양가 인상은 물론 올해 주택공급에도 적잖은 차질이 예상된다.

2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내 184개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가입한 철근콘크리트연합회와 종합·전문건설업체 사이에 진행 중인 하도급 공사비 인상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측은 지난 2일 연합회 소속 166개 업체가 100대 건설사와 일부 중견 건설사를 대상으로 공사비 20% 인상을 요구하며 공사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둔 이래 지금까지 협상을 이어오고 있다. 연합회는 골조 공사에 필수적인 철물·각재·합판 가격이 지난해 상반기 대비 50% 상승했고, 인건비도 10~30%나 올라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철근의 원재료인 고철 스크랩의 국제 가격만 해도 지난해 톤당 25만원, 올초 40만원에서 최근 60만원 중후반대를 넘나들고 있다. 이에 국내 철강사들도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나 가격을 올려 철근 가격의 기준인 ‘SD400 철근’이 역대 처음으로 톤당 100만원을 넘어섰다.

건설사들이 고통 분담이라는 대전제에 공감을 표하고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서 골조 공사는 재개됐지만, 일률적 공사비 인상에는 난색을 표하는 중이다. 중재에 나선 국토교통부 관계자에 의하면 각 현장별 실정에 맞춰 인상률을 조정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다만 철근콘크리트연합회가 이달 말 공사비 인상 요구에 대한 반영 실태를 파악한 뒤 후속 조치에 나서겠다고 밝혀 추가 공급중단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철근콘크리트와 레미콘 등 건설현장 전반에 쓰이는 시멘트의 시장 상황은 더 살얼음판이다.시멘트 생산단가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원자재인 유연탄이 문제다. 세계 3대 유연탄 수출국인 러시아의 물류가 막히면서 지난해 말 톤당 125달러에서 현재 250달러로 가격이 2배나 폭등한 것이다. 지난해 3월의 83달러와 비교하면 3배 이상 뛰었다.

특히 국내 시멘트 업계의 러시아산 유연탄 의존도는 무려 75%에 달한다. 쌍용C&E, 한일시멘트 등의 업체들이 공급망 다변화에 나서고는 있지만 이달 초 호주산 유연탄이 역대 최고치인 톤당 427달러를 기록하는 등 높아질 대로 높아진 가격에 마땅한 대체 수입선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살아나는 봄 시즌에 원자재 쇼크가 터지면서 업계의 시멘트 재고가 1~2일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유연탄 비축량도 한 달 남짓 버틸 물량에 불과해 공급 대란이 눈앞"이라고 토로했다.

이에 업계 전문가들은 이른 시일 내 수급이 개선되지 않으면 전국의 건설현장이 멈추는 초유의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유연탄 재고가 완전히 동이 나는 시점을 D-데이로 본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원자잿값 폭등이 건설비 상승으로 이어져 분양가도 술렁일 수 있다"며 "공사 중단까지는 아니어도 공기 연장에 의한 주택공급 차질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현 상황과 맞물려 윤석열 국민의힘 당선인의 공약 사항인 ‘납품단가 연동제’도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제도는 하도급 계약 기간 중 원부자잿값이 오르면 원사업자(원청)가 그에 맞춰 하도급업체(하청)의 납품단가를 높여주는 것으로 중소기업계 요청을 받은 윤 당선인이 공약집에 반영했다.

시멘트·레미콘·골조업계는 이를 통해 원자재 가격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어 조속한 도입을 기대하는 반면 비용 부담이 추가되는 건설사들은 면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청업체에 일방적 이점을 주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측이 상반된 입장을 견지함에 따라 정·관계를 중심으로 강제성을 갖는 입법화 대신 정책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상생을 유도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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