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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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장직에서 사퇴하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3월 17일, 선관위 전체회의가 관심을 끈 것은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 (이하 노씨)이 혹시 사퇴의사를 표명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참석자에 따르면 사퇴하겠다는 언급은 없었으며, 앞으로 선거관리를 잘겠다는 취지의 말을 했단다. 알다시피 노씨는 이번 대선의 사전투표를 제대로 말아먹었다. 코로나 확진자 숫자를 과소평가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투표용지를 흡사 오염물질 취급을 한 것이다.

그 결과 확진자들은 투표용지를 직접 사물함에 넣는 대신, 비닐이나 라면박스, 소쿠리 등에 넣어야 했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됐으니 망정이지, 만일 이재명 후보가 되기라도 했다면, 전국적으로 부정선거 규탄대회가 열릴 뻔했다. 상식적인 위원장이라면 이번 사태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대선 직후 그만두는 게 맞다. 선관위원장에 대해 우리 국민이 이렇게까지 분노한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노씨는 더 버티기로 한 모양이다. 선관위 내부에서마저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데도 말이다.

사실 선관위원장에 대한 우려는 임명 당시부터 있었다. 2020년 10월의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 의원들은 노씨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인데다, 민변에서 활동했던 경력을 들어 중립성에 의문을 표했다. 게다가 노씨는 이재명 후보가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를 다룬 대법원 판결에서 권순일과 함께 무죄 의견을 냈는데, 7대 5로 찬반이 갈린 이 판결 덕분에 이재명은 지사직 유지와 더불어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될 수 있었다.

노씨는 자신의 중립성에 의문을 표하는 야당의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답했지만, 그 후 벌어진 일들은 그 우려가 맞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예컨대 선관위는 2021년 4월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현수막에 쓰려던 ‘투표가 위선을 이깁니다’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 등의 문구를 허용하지 않았다. ‘위선’이나 ‘내로남불’이 특정 정당을 연상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다.

반면 선관위는 TBS가 벌인, 누가 봐도 1번을 찍으라는 취지인 ‘1합시다’ 캠페인은 허용하는, 극도의 편향성을 보여줬다. 이번 대선에서도 선관위는 이재명 후보가 대법원판결까지 난 검사사칭 전과를 자신의 선거 공보물에서 허위로 소명한 것에 대해 ‘허위사실 게재가 아니다’라고 친절하게 면죄부를 줬다. 사전투표 때 한바탕 난리를 피운데다 이런 전력마저 있으니, 국민들이 노씨를 규탄하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왜 노씨는 선관위원장 자리에 집착하는 것일까? 아마도 노씨와 그를 옹호하는 좌파들은 노씨가 아직도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2020년 총선 이후 보수에서는 사전투표에 부정선거의 소지가 있다며 사전투표를 꺼렸다. 사전투표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 3일간에 걸쳐 투표하는 쪽과 딱 하루만 투표하는 쪽 중 전자의 투표율이 더 높을 것은 당연하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보수는 이번 선거에서 사전투표를 열심히 독려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사전투표를 했고, 국민의 힘은 물론이고 가세연과 기타 보수 쪽 단체들이 감시단을 모집해 투표함을 감시함으로써 혹시나 있을 부정선거 우려를 씻으려고 애썼다. 이런 활동에 힘입어 보수 쪽의 사전투표 비율은, 물론 좌파들보다는 덜했지만, 예전 선거보다 높아진 듯했다.

아마도 이번 선거가 무사히 치러졌다면, 사전투표에 대한 보수 측의 거부감은 상당부분 사라졌으리라. 하지만 사전투표 이틀째, 선관위 측이 투표소에서 벌인 ‘난동’은 부정선거에 대한 보수의 공포를 다시금 증폭시켰다. 이런 판국에 노씨가 물러나지 않는다면, 6월 1일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보수의 사전투표 참여율은 훨씬 낮을 것이다. 혹시 노씨가 이런 의도로 위원장에서 물러나지 않으려는 것일까? 의도가 무엇이든, 노씨는 물러나야 한다. 그의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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