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영부인像 깬 커리어우먼
혹독한 흑색선전에도 팬덤 형성
팬카페 9만명 육박, 굿즈도 출시

김건희 여사 팬카페 ‘건사랑’. 21일 현재 8만7440명을 넘었다. /네이버카페 건사랑
2017년 코바나컨텐츠 대표로서 ‘주간조선’와 인터뷰 당시. /주간조선
대선 사전투표일(4일) 자택 근처 투표소에서 혼자 투표하는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 선대위
대선을 두달 앞둔 시점에서 팬들이 만든 합성 사진. 전적으로 팬들의 관점이다. 녹취록 파문 후 오히려 지지자들이 폭증했다. /카페 건사랑
팬들이 만든 합성사진 ‘아포믹 건희’. ‘김건희 녹취록’ 보도 이후 오히려 팬이 급증했다. 털털하고 호탕한 그녀에게 ‘걸크러쉬’의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 /네이버카페 ‘건사랑’

대한민국 대통령 영부인은 ‘현모양처 형’이어야만 할까? 아직 모습일 잘 드러내지 않는 김건희 여사지만, 대중의 호기심은 충분히 무르익어 있다.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한 여성으로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옷을 잘 입는다’는 점이다. 언론 노출 자체가 적어 자세한 언급이 어렵지만, 적은 아이템으로 수수하면서 맵시있게 연출할 줄 안다는 것은 쉽게 파악된다. 우선 ‘미술전공자’라는 이력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아울러 해외 유명 작가들을 유치한 굵직한 전시회들을 성공시키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등, 관련 업계 유수의 사업가 면모가 있다. 검찰총장 윤석열의 부인이기 이전에 전시기획사 코바나콘텐츠(2007~ )의 대표였던 것이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수십년 축적된 우리사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긍정적으로 평가할 측면이 많다.

이번 3·9 대선은 역대 대선들과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데, 무엇보다 야당 후보 부인에 대한 극렬한 흑색선전이 있었다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른바 ‘검증’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소문 및 관련 보도는 혹독하다 못해 ‘인권유린’이라 할만한 수준이었다.

더구나 주류언론이 적극 가세했다는 점, 심지어 공영방송 MBC가 한 매체 기자에 의해 불법 녹취된 그녀의 통화내역을 보도했다는 것은 역사에 남을 일이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에 ‘김건희 지지자 급증’으로 이어졌다. 자유로운 대중은 악의적 의도를 가진 거대 언론에게 휘둘리지 않았다.

예로부터 남성 권력자에 대한 불만이 그 최대 측근인 부인에게 쏠리는 사례가 많다. 때로는 살벌한 정치투쟁의 희생이 되기도 했다. 2022년을 사는 우리는 자문해야 한다. 대통령 영부인에게 ‘국모’를 기대하는 게 온당한가. 새로운 대통령 영부인을 바라보는 시민 역시 진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출현은 그런 점에서 그 자체로 흥미롭고, 신선한 바람이 전망된다.

작년 12월 19일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김건희 여사 팬카페 ‘건사랑’은 200여명 내외로 출발했다. 그런데 MBC의 녹취록 공개 이후 2만5000여명으로 급증, 3주 만에 7만명을 기록하더니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빠르게 8만명을 돌파했다(21일 현재 8만7440명을 넘어 계속 늘어나는 중).

팬카페 회원들은 김건희 여사 얼굴을 합성한 ‘원더건희’, ‘아토믹 건희’ 등을 내놨으며, 김건희 여사 캐릭터와 함께 팬카페 이름이 새겨진 ‘굿즈’ 제작 등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한편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는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우선 역할이라 생각한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소외계층이나 성장의 그늘에 계신 분들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공개적인 화려한 활동보다 소외계층을 챙기는 내조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영부인의 역할에 충실한 계획이다. 김건희 역사가 설립해 운영해 온 코바나컨텐츠의 대표 역할은 당연히 최소 금후 5년간 중단이 불가피하다. 그것만으로도 개인적인 희생을 감수하며 공익에 헌신하는 셈이다.

이번 기회에 다른 나라의 대통령 영부인들을 살펴보자. 우선 미국이다. 인류 최초 ‘왕이 없는 나라’, 근대적 공화국 미국의 영부인들 가운데 최고 인기는 변함없이 ‘재클린 케네디(1929~1994)’다. 그 인생 행적은 대중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타임즈-헤럴드 사진기자로 일하며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인터뷰하다 젊고 매력적인 상원의원 존 F. 케네디를 만나 1953년 결혼, 7년 후 남편이 제3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영부인으로서 국내외의 큰 사랑을 받았다.

능통한 프랑스어, 프랑스 문화·역사에 대한 탁월한 조예가 정치인 남편의 위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역사가 짧은 미국의 시민들에게 유럽, 특히 프랑스의 언어·문화는 동경의 대상이다). 백악관이 애국심을 고취시키면서 세련미 넘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은 그녀의 공으로 평가된다.

재클린 여사가 세계적 화제의 주인공이 된 것은 남편이 1963년 흉탄에 비명횡사한 것, 그리고 5년도 안 돼 그리스의 해운왕이자 세계적인 부호였던 아리스토텔리스 오나시스(1906~1975)와 재혼한 일일 것이다.

‘우아하고 총명한 영부인’‘국민적 아이돌’이었던 만큼 그녀의 재혼은 충격이었고, 아쉬움과 분노를 표출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오나시스 사후 미국으로 돌아와 사회활동을 펼치다 세상을 떠났으며, 수도 워싱턴DC 한복판의 국립묘지 전 남편 케네디의 옆에 잠들어 있다.

케네디의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자체가 대부분 고향땅에 묻히는 역대 대통령들과 달랐지만, 재혼한 부인 재클린이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이름으로 그 옆에 묻힌 것도 인류문명사에 다시 없을 사례일 것이다. 미 국민 대다수가 동의했다는 게 사실 가장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미국에서 ‘재클린 파묘 논란’이 일었다는 뉴스는 없었다. 오늘날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 최고의 영부인 1위가 여전히 ‘재키’(재클린 여사의 애칭)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퍼스트레이디’인 수상(총리 대신) 부인에게 특별한 이목을 안 쏟는 편이다. 아베 신조 전 수상의 부인 아키에(1962~ ) 여사의 분방함과 활달한 ‘한류 팬’ 모습이 언론에 오르내린 바 있으나, 그것 자체가 남편의 정치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스캔들로 비화하진 않았다.

아베는 2006년 제90대 총리를 역임한 이래 96~98대(2012~2020)까지 재직하며 ‘일본 최장수 총리대신’ 기록을 세웠다. 여러 정치적 고비가 있었으나, 부인의 이미지 때문에 결정적 위기를 맞은 적은 없다. 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유코(1962~ ) 여사는 단아한 자태와 영어 능력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다. 역대 퍼스트 레이디들 가운데 참신한 유형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조용한 내조를 하는 영부인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처럼 이례적인 존재도 있었다. ‘25살 연하의 서양여성’이면서 남편에게 철저히 순종적이었다는 점, 독립투사 남편의 든든한 동지이자 비서였으며 나중엔 인재도 돈도 부족한 신생독립국의 뛰어난 외교관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외 ‘유쾌한 정숙씨’로 불린 활달한 영부인이 있다. 2022년, ‘영부인에게 특정한 이미지를 강요하는 정서’를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 아닐까. 막중한 책임과 업무에 시달리는 대통령에게 휴식과 안정을 제공하는 한편, 최소한의 필수적 공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 이상의 강요하는 시대정신에 어긋난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