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 모여있는 상징물들은 美 정체성·역사 대변
한국전쟁기념공원서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실감

워싱턴DC의 벚꽃축제. 1912년 일본이 기증한 3000그루 벚나무로 출발해 해마다 장관을 이룬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만명이 찾는다. /임명신 기자
워싱턴DC의 벚꽃축제. 1912년 일본이 기증한 3000그루 벚나무로 출발해 해마다 장관을 이룬다.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만명이 찾는다. /임명신 기자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벚꽃축제가 20일부터 시작됐다(4월 17일까지). 중심지는 포토맥 강줄기 위의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호수 주변이지만 도시 전체가 들뜬다. 도시의 심장부 백악관·국무성·국회의사당 등 주요 관공서·기념관·기념물로 가득한 곳에, 벚꽃 모티브의 가방·머리띠 등 관련 상품을 착용한 관광객들로 붐비고 거리 공연도 펼쳐진다. 전 세계로부터 오색인종이 모여드는 최대 ‘벚꽃놀이’는 미국에 있는 셈이다. 이 벚나무들이 자연발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포토맥 공원의 이 장관은 1912년 미·일 우호의 상징으로 일본에서 보내진 3천 그루의 벚나무로 출발했다. 청일전쟁(1895)·러일전쟁(1905)에서 승리한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1910)하는 등, 승승장구하던 시절이다. 그 역사를 되새기는 기념물이 벚꽃 흩날리는 호수 둘레 길 한 구석에 서 있다.

19세기 중반의 미일수호조약을 기념하는 석탑이다(1957년 일본 요코하마橫濱시 기증). 1854년 요코하마 앞바다에 나타난 미국 함선의 위용에 경악해 순순히 개항한 일본, 그 이후의 역사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심리·태도가 읽힌다. 중국의 남경조약(1842)과 우리나라의 조일수호조약(1882)이 ‘굴욕·상처의 역사’로 기억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중·일 모두 ‘불평등 조약’으로 근대사가 시작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워싱턴DC.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공원. 19개의 무장한 미군병사의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절박하다. 바닥에 새겨진 헌사도 유명하다(
워싱턴DC. 한국전쟁참전용사 기념공원. 19개의 무장한 미군병사의 표정 하나하나가 생생하고 절박하다. 바닥에 새겨진 헌사도 유명하다("듣도보도 못한 나라, 그나라사람들을 구하라는 부름에 응한 아들딸들에 경의를 표하며"). /워싱턴DC

제퍼슨 기념관, 링컨 기념관, 마르틴 루터 킹을 부조한 석조 오브제 등 포토맥 공원의 또 다른 명물들 또한 이 벚꽃축제의 의미를 더해준다. 자유·민주·공화의 가치를 내세운 독립정신과 노예해방, 인종문제와 흑백갈등의 역사를 상징하는 장엄한 건축물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20세기 세계사에 미국이 어떻게 관여했는지, 어떻게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해 갔는지 보여주는 것들이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이 2차 대전을 종식시킨 ‘해방자로서의 미국’을 부각시킨다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기념공원은 냉전의 기억을 일깨운다.

‘한국전쟁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은 참전 용사들의 오브제 19개가 강렬하게 눈길을 끈다. 완전무장 상태의 병사들 표정 하나하나 절박하고 생생해서 보는 이를 숙연케 한다.

"듣도 보도 못한 어떤 나라와 그 나라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답한 아들 딸들에게 국민 모두의 경의를 표한다: Our nation honors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never met)". 바닥에 새겨진 헌사가 감명깊고, 그 옆 벽화 위의 구절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또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포토맥 공원에 모여 있는 상징물들은 미국의 정체성과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것들을 심장부에 안고 있는 워싱턴 D.C.야말로 과연 미국의 수도, 20세기 이래 인류사의 핵심가치를 이끈 중심지라 할 만하다. ‘한국전쟁 기념공원’은 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미·중 패권전쟁 속 동북아가 100년 전 격동의 시대 못지 않은 이 시대, ‘미·일수호조약 기념탑’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이야말로 한국인들이 워싱턴DC.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할 곳 아닐까. 미·일우호사의 과거·현재가 물결치는 현장에서, 우리사회를 갈라 놓는 ‘근·현대사 해석’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포토맥 강줄기 호수 벚꽃길에 서있는 미일수호조약기념탑. 1854년 미국에 의한 개항을 기념해, 역사의 현장이던 요코하마시가 1957년에 기증했다.
포토맥 강줄기 호수 벚꽃길에 서있는 미일수호조약기념탑. 1854년 미국에 의한 개항을 기념해, 역사의 현장이던 요코하마시가 1957년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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