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서 27일까지 특별전…육조 위치·조직 소개

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18세기 한양 모습을 그린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연합
18세기 한양 모습을 그린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 /연합

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육조(六曹)의 위치는 물론 조직 구성과 관원 생활상을 상세하게 다룬다(서울역사박물관 3월 27일까지). ‘세종대로’를 조선시대엔 ‘육조거리’라 했다. 중앙 관청인 이조·호조·예조·병조·형조·공조를 아우르는 용어가 ‘육조’다.

18세기 한양 모습을 그린 ‘도성대지도’(都城大地圖)를 보면 육조거리엔 의정부를 비롯한 육조·사헌부·한성부 등이 자리하였다. 그 배후지역엔 궁궐에 물품을 조달하거나 핵심 관청을 지원하는 하급 관청들이 있었다.

조선시대 관료 조직은 당상관(堂上官)·당하관(堂下官)·참하관(參下官)으로 나뒨다. 당상관이 되려면 보통 문신은 정3품 통정대부, 무신도 정3품 절충장군 이상이어야 했다. 참하관은 종7품 아래, 당상관과 참하관 사이에 당하관이 있었다.

전시 3부인 ‘육조거리로 출근하는 사람들’엔 관원들이 퇴근해 ‘술 먹고 노는’ 일상을 만들어 놓은 모형물도 있다. 현대 직장인처럼 업무를 마친 후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영조(재위 1724∼1776)의 금주령 이후에도 육조거리 뒷골목은 술집이 즐비한 유흥가였다고 한다. 수공업 중심지로서, 물품거래가 이뤄지 많은 사람이 왕래하던 곳이기도 하다. 당시 최고의 번화가였으나, 사농공상(士農工商) 질서를 떠받치는 유교적 세계관은 뚜렷하다.

조선의 인쇄술·중앙집권체제·관료제 등은 선진 문물이지만, 상공업을 천시하는 농업국가의 가난은 필연이다. 꾸준히 늘어나는 인구를 동시대 주변국들보다 낙후된 농경기술로 먹여살릴 수가 없었다.

전시장에 켜켜이 쌓인 토층(土層)은 육조거리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새문안교회로 향하는 길목에서 발굴된 15세기 분청사기 접시 조각(토층 아래), 19세기 백자 접시(토층 위), 무기(武器)인 총통이나 동으로 제작한 촛대(토층 가운데)가 전돼 있다.

이번 전시는 서울역사박물관·국립고궁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기획한 ‘광화문 600년: 세 가지 이야기’ 중 하나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은 이미 종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는 31일 막을 내린다. 

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특별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특벌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특벌전 ‘한양의 상징대로, 육조거리’.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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