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에츠와 섬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 한국 SK실트론이 2027년 26조75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견되는 세계 웨이퍼 시장을 놓고 치열한 설비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생산용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를 손에 든 SK실트론 연구자의 모습. /SK실트론
일본의 신에츠와 섬코, 대만 글로벌웨이퍼스, 한국 SK실트론이 2027년 26조7500억원 규모로 성장이 예견되는 세계 웨이퍼 시장을 놓고 치열한 설비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차세대 전력반도체 생산용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를 손에 든 SK실트론 연구자의 모습. /SK실트론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의 장기화로 반도체 기업들이 생산량 확대에 박차를 가하면서 반도체의 핵심 원자재인 웨이퍼의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웨이퍼 병목현상이 최소 4년간 이어질 것이며, 관련 산업은 장기 호황 속에서 5년 뒤 27조원 대로 성장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세계 웨이퍼 시장의 80% 이상을 장악한 한국·일본·대만 기업들이 조 단위 설비투자 경쟁에 나서고 있어 올해를 기점으로 치열한 순위 다툼도 예견된다.

23일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마켓은 전 세계 웨이퍼 시장이 향후 5년간 견조한 성장을 거듭해 오는 2027년 220억3000만달러(약 26조75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26억1700만달러(15조2800억원) 대비 57.2% 증가한 수치다. 지난달 국제반도체재료장비협회도 2021년 글로벌 웨이퍼 출하량이 전년보다 13.9% 늘어난 141억6500만 제곱인치(in²)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2024년 160억3700만in²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웨이퍼는 원통형 실리콘 단결정을 얇게 잘라낸 원판(圓板)을 말한다. 이 위에 회로를 새겨 넣고 네모 모양으로 자른 것이 반도체다. 밀가루 반죽인 도우 없이 피자를 만들 수 없듯 웨이퍼도 반도체 제조에 필수불가결한 재료다.

웨이퍼 시장의 잇단 성장 전망은 꽤 이례적인 일이다. 실제 2017년 이후 2020년까지 웨이퍼 출하량은 118억in²에서 127억in²를 오가며 큰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반전이 일어났다. 삼성전자, 대만 TSMC, 미국 인텔을 필두로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설비 증설이 이어지면서 웨이퍼 수요도 덩달아 폭발한 것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세계 웨이퍼 산업은 공급과잉 상태였지만 지난해 3분기부터 공급부족으로 전환됐다"며 "물량이 부족한 탓에 12인치(300㎜) 웨이퍼에 밀려 구식으로 치부됐던 8인치(200㎜)의 수요마저 크게 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적어도 2026년까지는 활황이 이어져 웨이퍼 업계의 매출과 수익성 향상이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세계 웨이퍼 시장은 상위 5개사가 전체 시장의 94%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일본의 신에츠(31.2%)와 섬코(23.8%), 대만 글로벌웨이퍼스(16.7%), 독일 실트로닉(12.3%), 한국 SK실트론(10.6%)이 주인공이다.

이들 중 실트로닉을 제외한 4사는 이번 기회를 퀀텀점프의 계기로 삼기 위해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실트로닉의 경우 지난해 글로벌웨이퍼스와 진행한 매각 협상이 독일 경쟁당국의 불허로 무산된 뒤 정중동 행보를 유지 중이다.

27조원대의 시장을 놓고 펼쳐지는 한국·일본·대만 삼국지의 신호탄은 일본이 쏘아 올렸다. 지난해 10월 섬코가 2287억엔(2조4000억원)을 투자해 300㎜ 웨이퍼 설비 확충에 돌입한 것이다. 이어 올해 초 신에츠가 800억엔(83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발표했다. 신에츠의 메인 투자처도 300㎜ 웨이퍼 라인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일본기업의 양강 굳히기에 맞서 글로벌웨이퍼스와 SK실트론도 뒤집기 한판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속속 결정했다. 먼저 글로벌웨이퍼스가 지난달 7일 향후 3년간 신규공장 건설에 20억 달러, 기존 공장 증설에 16억 달러 등 총 36억 달러(4조3700억원)의 투자 계획을 공식화했다. 실트로닉 인수에 쓰려던 자금을 생산시설 확충에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SK실트론 역시 이달 16일 1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전했다. 경북 구미의 4만2716㎡ 부지에 3년간 1조495억원을 투입해 300㎜ 웨이퍼 생산량을 대폭 늘릴 방침이다. 양산 시점은 2024년 상반기다.

특히 SK실트론은 구미 투자를 분수령 삼아 300㎜ 웨이퍼 시장에서 1등으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다. SK실트론은 전체 웨이퍼 시장에선 5위지만 300㎜ 웨이퍼에 국한하면 3위에 위치하고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한 목표라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지난해 글로벌웨이퍼스의 실트로닉 인수 무산에 더해 최근 일본 후쿠시마 해상에서 발생한 진도 7.3의 지진으로 인근지역에 공장을 보유한 신에쓰와 섬코가 생산차질을 빚고 있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 역시 SK실트론의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SK실트론의 300㎜ 웨이퍼 투자로 일본산 웨이퍼의 수입 대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등 국내 반도체 고객사의 생산 안정성 제고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도체 웨이퍼 이미지1/게티
반도체 웨이퍼 이미지1/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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