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푸에블로호 납치·판문점 도끼만행 숱한 도발
한국 주둔 65년간 제2한국전쟁 막는 안전장치로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피랍됐다 귀환하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모습. /연합
1968년 1월 23일 원산 앞바다에서 피랍됐다 귀환하는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의 모습. /연합

1957년 대한민국에 주한미군이 주둔한 지 65년이 지났다.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제2의 한국전쟁’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주한미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대남도발을 강행했고, 이 중 일부 사례에서는 미군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다.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은 미 해군의 정부수집함 푸에블로호가 1968년 1월 23일 동해상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군 해군 근위 제2 해군전전대의 공격을 받고 강제 나포당한 사건이다.

푸에블로호 승조원 83명 중에서 나포 도중 총격으로 1명이 사망했으며, 나머지 82명이 북한에 억류됐다가, 훗날 미국으로 송환됐다.

사건 장소가 원산 앞바다(북위 39도 25분, 동경 127도 54분)였지만 북한 측 영해를 침범했는지 공해상에서 나포당했는지는 북한과 미국이 각자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하지만 북한 측이 푸에블로호 나포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던 것은 사실이다. 북한 해군은 초계정 4척을 동원해 푸에블로호를 사면에서 포위하고 접근했으며, 미국 전투기가 구출하러 올 것을 대비해 요격 전투기까지 출격시켰다.

이 사건 불과 이틀 전에는 북한군 특수부대원 30여 명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 인근까지 침투했다가 대부분이 사살당하고 김신조가 생포당한 ‘1·21사태’가 있었다.

이로 인해 한반도의 전쟁위기감은 최고조로 치솟았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가능한 사태를 확대시키지 않고 싶어했다. 결국 외교적 협상을 통해 승조원 82명이 미국으로 송환됐으며 푸에블로호는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져 북한의 ‘전리품’으로 전시되고 있다.

승조원들을 인질로 잡은 유리한 상황에서 외교적 협상을 통해 미국과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은 김일성 정권은 불과 열 달 뒤인 1968년 10월 남한내 해방구 건설을 목표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일으켰다. 또한 푸에블로호를 납치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EC-121 격추 사건을 저질렀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발생한 일명 '도끼만행사건' 모습. /연합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 발생한 일명 '도끼만행사건' 모습. /연합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8년 뒤, 북한은 미군에 대해 보다 과격하고 직접적인 도발을 일으킨다.

1976년 8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주한UN군 경비대 작업반은 초소의 관측시야를 방해하는 미루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했다. 이에 8월 6일, 한국군 노무자 4명과 UN군 4명이 미루나무 절단 작업을 시도했는데 북한군이 나타나 작업을 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작업을 감독하던 경비중대장 아서 보니파스 미 육군 대위는 작업을 속행하도록 지시했고, 북한군은 이들을 기습해 폭행을 시작, 보니파스 대위는 도끼에 맞고 사망했다. 보니파스 대위뿐만 아니라 소대장 마크 배럿 미 육군 보병중위 역시 둔기에 수십차례 구타당해 살해당했다.

무력 사용이 금지된 JSA에서 이런 만행이 일어났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북한의 대응은 더욱 가관이었다.

미군 측이 나무를 자르는 것을 보고 경비병들이 제지하러 나섰는데, 갑자기 미군이 자신들에게 도끼를 던졌다고 주장했다. 이에 도끼가 날아오자 북한군 하전사들이 날아오는 도끼를 손으로 잡아 미군에게 다시 던졌다는 말도 안되는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나중에는 한국과 미국측에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에 분노한 한국과 미국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군사작전을 개시할 움직임을 보이자 북한은 긴급하게 수석대표회의를 요청했고, 결국 김일성이 직접 유감 성명을 표했다. 또한 재개된 ‘미루나무 벌목작업’을 북한측이 제지하지 않고 그냥 방관했으며, 이 작업이 이루어질 당시 한국군 특전사 병력이 북한군 초소에 난입해 초소 4개를 파괴하는 보복작전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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