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고통은 감상자의 희열··· 오! 미켈란젤로여
예술가 고통은 감상자의 희열··· 오! 미켈란젤로여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8.0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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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미켈란젤로는 1475년 이탈리아 카센티노 지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골 면서기였고, 어머니는 그가 여섯 살 때 세상을 떠났다. 홀아비가 된 아비는 어린 미켈란젤로를 한 여자에게 맡긴다. 아마 세상을 떠난 아내의 친척이었을 것이다. 여자의 남편은 석공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부를 잘해 출세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리기에 흥미를 보였다. 아버지는 매를 때리면서 아들의 공부를 독려했지만 미켈란젤로는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

피에타(Pietà-1499년, 대리석).
피에타(Pietà-1499년, 대리석).

어린 미켈란젤로는 석공의 작업을 어깨너머로 보며 자랐다. 돌을 다루기에는 아직 어려서 석공은 미켈란젤로에게 돌 쪼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연필로 그림을 즐겨 그렸다. 석공은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았고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다.

여자는 미켈란젤로로 하여금 미술공부를 하게 할 것을 아버지에게 권유한다. 그리하여 미켈란젤로는 13살에 피렌체의 화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제자로 들어가 도제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천재의 재능은 일찍 발견되는 법이다. 일 년 남짓 도제수업을 받던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그곳을 나온다. 그리고 회화 대신 조각으로 전공을 바꾸어 메디치 가문의 예술학교에 입학한다.

미켈란젤로를 점 찍은 메디치가의 로렌초公

피에타 성모의 얼굴
피에타 성모의 얼굴

예술가들의 후견인으로도 유명한 메디치가의 로렌초공은 미켈란젤로를 눈여겨보고 마침내 후원을 결정하고 이때부터 미켈란젤로는 눈부시게 성장한다.

바티칸 시티 성 베드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Pietà)>는 미켈란젤로가 선보인 첫 작품이다. 그의 나이 23살이 되던 해였고, 추기경 장례식에 쓰일 용도로 주문제작된 것이었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제막식 날 작품을 감싼 장막이 걷히자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하며 조각의 재료를 의심하며 손으로 차가운 돌을 만져보았다. 무명(無名)작가였던 탓에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한 미켈란젤로는 성당 기둥 뒤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제막식이 끝나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작품에 서명을 새겨 넣었다. 당시의 작가는 서명을 하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미켈란젤로의 그러한 행위는 작품이 철거되거나 벌을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피에타’는 철거되지 않았고 벌도 받지 않았다. 오늘날 ‘피에타’는 위대한 걸작이라는 평가 외에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성모의 품에 안긴 죽은 예수
성모의 품에 안긴 죽은 예수

‘피에타’로 실력을 인정받은 미켈란젤로는 당시 조각 계에 이름을 알리는 것에 지나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오래지 않아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되었다.

이 작품을 완성하는데 3년이 걸렸는데, 그 중 재료를 찾는 데만 1년 이상 허비했다. 피렌체를 떠나 이탈리아 전국을 돌다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는데 덤불속에 거대한 돌덩어리를 발견했다. 미켈란젤로는 그것을 본 한 순간 작품의 영감이 떠올랐다.

훗날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 저는 재료의 필요하지 않은 부분만 떼어냈을 뿐입니다.

다비드 상(왼쪽). 다비드의 얼굴(위)과 뒷 모습(아래)
다비드상(1504년, 높이 4.34m 피렌체 아카데미아미술관). 다비드의 얼굴(위)과 뒷 모습(아래)

‘다비드상’은 다윗이 돌망태를 어깨에 맨 채 골리앗을 응시하며 싸움 직전 순간의 나체(裸體)청년상이다. 이 작품에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기법이 엿보이는데, 바로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 기법이다.

콘트라포스토는 이탈리아어로 '정반대의 것'이라는 뜻이다. 조각에 있어 인물의 구도를 일컫는 말로, 고대 그리스 조각가들이 창안했다. 몸무게를 한쪽 다리에 싣고 다른 쪽 다리는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유지한다. 몸무게가 이동함에 따라 둔부·어깨·머리는 신체 내부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듯이 기울어져 있다. 콘트라포스토는 나체상뿐만 아니라 착의상에도 나타난다. 그리스인들은 BC 5세기 초에 초기 인물조각을 지배해온 정적인 정면자세, 즉 몸무게가 두 다리에 똑같이 실리는 자세에 대한 대안으로 이 형식을 고안했다.

다비드상은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웅장하게 서 있었다. 다비드상은 피렌체공국의 수호 상이었다.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상은 오염을 막기 위해 1873년 아카데미아 갤러리 안으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황의 부름을 받은 미켈란젤로

어느 날,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 2세의 호출을 받고 로마의 교황청 집무실을 찾아갔다.

“미켈란젤로, 자네가 시스티나 성당 돔 천장화를 맡아줘야겠네.”

“교황님도 아시다시피 제 전공은 조각입니다. 하오니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것은 주문이 아니라 명령이다!”

시스티나 성당 돔 천장화. 1508~1512년.
시스티나 성당 돔 천장화(1508~1512년).

미켈란젤로 평전을 쓴 작가 로맹 롤랑은 그 일에 대해 이렇게 해석한다.

미켈란젤로를 시기한 나머지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브라만테가 교황에게 시스티나성당 돔 천장 벽화를 그릴 적임자로 미켈란젤로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벽화를 실패할 것이고, 그것으로 그의 명예와 명성은 하루아침에 땅으로 떨어질 것이었다.

“교황님, 그 일은 저보다 라파엘로가 적임자입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주십시오.”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를 추천하고 자신은 빠져 나오려 했다. 그 해에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전의 벽화를 그려 대성공을 거두었다.

“아니다. 이 일은 라파엘로가 아니라 바로 네가 적임자다.”

이렇게 하여 미켈란젤로는 억지로 시스티나성당 돔 천장 벽화를 억지로 떠맡았다. 그것은 미켈란젤로에게 큰 시험이자 시련이었다.

1508년 5월 10일에 그 역사적 작업은 시작되었다. 천재의 90년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든 시기가 닥쳐온 것이다. 그 시절 미켈란젤로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자신이 없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교황에게 돈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작업을 한 게 없기 때문에 보수를 받을 생각도 없기 때문입니다. 일이 안 되는 것은 이 작업이 내 본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간만 자꾸 헛되이 흘러갑니다. 신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미켈란젤로에게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는 미켈란젤로에게 자주 돈을 요구했다. 성공한 예술가였지만 미켈란젤로는 돈이 없었고 아버지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미켈란젤로는 깊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림은 언제 끝나느냐?”

교황은 시스티나 성당에 불쑥 찾아와 그렇게 묻곤 했다.

“완성되는 날에 끝납니다.”

교황은 무슨 대답이 그러냐며 버럭 화를 냈다.

“저는 이 작업을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벌을 내려도 하는 수 없습니다.”

최후의 심판(1541년 시스티나성당).
최후의 심판(1541년 시스티나성당).
최후의 심판 가운데 부분(왼쪽)과 아래 부분.
최후의 심판 가운데 부분(왼쪽)과 아래 부분.

미켈란젤로는 작업장을 벗어나 집으로 떠날 차비를 했다. 그러자 교황 율리시스 2세는 급히 사자를 보내 작업을 독려하고 돈을 챙겨주었다.

교황과 미켈란젤로 사이에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예술가의 고통은 감상자의 기쁨이 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돔 천장화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4년만인 1512년 11월 1일 마침내 공개되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거대한 천장을 유기적인 통일성을 지닌 장대한 회화의 세계로 바꾸어놓은 그의 작업은 예술적 한계를 극복해낸 것이었다.

돔 천장화 <천지창조>와 더불어 시스티나 성당에는 벽화 <최후의 심판>이 있다. 1533년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의뢰한 것인데, 클레멘스 7세가 세상을 떠나자 1535년 파울루스 3세가 다시 그 작업에 명령을 내려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그 역시 인간으로서 감당키 어려운 고난과 노력으로 1541년에 완성되었다.

◇필자 박석근 작가는?
경남 마산에서 출생하여 중앙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주요 저서
ㆍ장편소설 <외로운 사람들은 바다로 간다> 책세상
ㆍ장편소설 <숨비소리> 책세상
ㆍ창작집 <남자를 빌려드립니다> 민음사
ㆍ청소년지식소설 <수상한 화가들> 사계절 등

sgp@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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