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박지원의 失魂人', 오늘은 '도종환의 앵무새'
어제는 '박지원의 失魂人', 오늘은 '도종환의 앵무새'
  • 최성재
  • 승인 2018.04.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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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에 언론사 사장단을 대동해 방북, 김정일을 만난 박지원(왼쪽)과 예술단을 이끌고 김정은을 '알현(?)'하는 도종환 문체부장관. 

[時論/ 최성재 교육 문화 평론가]

[박지원은 무관(無冠)의 제왕이라고 뻐기던 언론인 46인을 평양으로 모셔가서 몽땅 실혼인(失魂人)으로 만들더니, 도종환은 한류의 세계적 열풍에 우쭐하던 꾀꼬리 예술단 160여 명을 평양으로 데려가서 앵무새 일색으로 탈바꿈시켰다.]

중남미에는 선무당들이 안방극장을 독차지한다고 한다. 그들은 모르는 게 없는 자동화 응답 기계로서 사회자가 묻기만 하면, 어떤 분야든지 혜안이 가득 찬 정답을 척척 내놓는다고 한다. 방송 출연은 부업이고 그들의 실제 직업은 소설가나 시인이나 극작가! (≪Culture Matters≫ Lawrence Harrison & Samuel Huntington, 2000)

한국에도, 전 세계 개도국의 이상향 한국에도 괴이하게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그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일류가 사라진 자리에 삼류가 온통 안방극장에 겹치기 출연하여, 어찌 그리 아는 게 많은지, 사회자가 묻기만 하면 지당한 말씀을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두 번만 들으면 무슨 소리를 할지 뻔히 예측되건만(386운동권의 고장 난 축음기), 사회자와 출연자들이 번갈아 무릎을 치고 눈을 아침햇살에 화답하는 거울 호수처럼 반짝이며 여차하면 침도 꼴깍꼴깍 삼키면서, 민주화된 멋진 신세계에 새삼 감사하면서, 때로 울컥 감격하면서, 참 암울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동어반복을 수없이 지겹지도 않는지,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문득, 꽤 오래 전의 일이 떠오른다. 당시 다섯 살배기 막내딸이 우리 집도 이제 자가용 있다며, 옆집 아줌마에게 근 두 달 동안 만날 때마다 하루에도 열두 번 자랑했다.

“영민이(영민 오빠네) 아줌마, 우리 자가용은요 엘란트라예요! 내 생일날에 샀어용~”

“아하, 그렇구나! 아유, 좋겠당~”

그러면서 그들은 곧장 개탄해 마지않고, 부리부리 십자군의 푸른 눈을 또는 무자헤딘의 검은 눈을 부라리며 증오의 누런 이빨(이나 좀 잘 닦으시지, 흐흐^.^)을 으르렁거렸다.

“수구꼴통, 죽여라!”

언론사 사장단을 바보로 만들더니, 연예인들을 '꼭두각시'로 

2000년 8월 5일부터 7박 8일 동안, 당시 문화부 장관 박지원 단장이 신문방송통신사 사장 46인을 평양에 모시고 갔다. 남북정상회담 약 두 달 후였다. 조선과 동아 빼고는 유수의 신문방송통신사가 총망라되었다. 그들이 무엇을 보고 듣고 먹었는지, 누구누구를 만났는지, 숙소는 어땠는지 ‘숙박검열’ 없이 잠은 잘 잤는지, 한국에서처럼 한밤중에 ‘내가 누군데!’ 하며, 고성(高聲)하고 방가(放歌)했는지, 예전에,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도 그들이 박정희와 전두환을 술집에서 마구 깠듯이 김일성과 김정일을 고려호텔 바에서 사정없이 깠는지, 마음대로 단 한군데라도 돌아다닐 수 있었는지, 그건 지금도 특급 비밀이다.

그들은 서울에 오자마자 모조리 실혼인(失魂人)이 되어 버렸다. 어찌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 고분고분하고 평양에 대해 우호적인지 처음엔 국민들이 어리둥절했지만, 환호작약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졌다. 반면에 동행하지 않았는지 못했는지 모르나, 조선과 동아는 그때부터 문화혁명의 대상으로 낙인찍혀, 멀리 일제시대부터 시작하여 군인 대통령 시절에 그들이 보도했던 내용들이 발췌되어 인터넷을 달구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으로 보도했음에도 46인의 이너서클에 못 낌으로써, 그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과 동아도 오래 가지 못했다. 논조가 서서히 중립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좌향좌하기 시작했다. 논설위원도 특정 지역으로 대거 물갈이되기 시작했다.

연예인은 정치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대개 일반인보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들은 대체로 일상사에, 머리 쓰는 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일은 딱 질색, 그저 재미있는 일에 꽂힌 우주 소년소녀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대중적 인기 덕에 좌우 불문, 자리를 빛내는 데 받들어 모셔지기 쉽다. 그렇게 몇 번 융숭한 대접을 받고 덕분에 돈도 잭팟 터뜨리듯 겁나게 들어오고 박수갈채도 한여름 햇살처럼 쏟아지는 무대에, 방송에, 행사에 자주 서게 되면,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자존자대(自尊自大)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장관으로 발탁되기도 하고 국회의원 자리도 꿰찰 수도 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처럼 연예인으로서보다 정치인으로서 훨씬 뛰어난 예외도 있지만, 대체로 연예인은 정치나 경제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게 좋다.)

흙수저 세탁소 주인과 '접시꽃 당신'의 출세쇼

북한은 어떤 자유도 보장된 게 없다. 주인 한 명에 나머지는 모두 노예인 생지옥이다. 한국 노래? 그건 이불 속이나 비밀이 철두철미 보장된 곳에서 절대 안전한 곳에서만 들어야 한다. 그러다가도 들키면 바로 교화소나 정치범 수용소로 잡혀 간다. 그까짓 노래 한 곡 들었다고!

“못 찾겠다, 꾀꼬리!”

이걸 장마당이나 평양역이나 인민대궁전에서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사상 검열과 신분 확인을 거친 자들이 박수와 갈채와 대담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끝에 부리부리 보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본대로 연기하는 곳에서만, 3대 세습 기간 동안 단 세 번인가 네 번인가, 5000만에게 연방제통일과 인권유린을 평화와 봄으로 호도시킬 무대에서만 그 무대에 서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받아들일 사람만 부를 수 있다.

“김일성 수령 만세, 김정일 장군 만세, 김정은 위원장 만세!”

오로지 이 앵무새 노래만 무시로 가능하다. 오죽 했으면 탈북 소년소녀들이 만주의 길거리에서 구걸하면서도 이 노래를 방실방실 웃으며 부른다. 그게 아는 노래의 전부니까!

북한에서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양대 핵심 부서이다. 조직지도부는 인사를 전담하여 펜 끝으로 2300만의 생사를 결정하고, 선전선동부는 2300만의 말과 생각을 앵무새화하고 그들의 감정과 직관을 유일수령에 대한 공포 또는 감사, 이 둘 중 하나로 통일한다.

‘남측’의 박지원과 도종환은 각각 선전의 인민 영웅과 선동의 노력 영웅으로 내정되어 있을지 모른다. 흙수저 세탁소 주인과 접시꽃 시인이 출세의 동아줄을 잘도 잡은 셈이다. 남북에서 공히 인명사전 앞자리에 오른 사람이 몇이나 될까. (2018. 4. 9.)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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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루 2018-04-15 22:43:06
요즘 언론도 정말 낯뜨거워질 정도로 앞다투어 문비어천가를 불러대느라 정신 없습니다. 아예 뉴스나 신문과 담을 쌓고 지내는 것이 차라리 속편할 때가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