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근
박석근

북한은 지난 24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내 정권교체기 틈을 타 또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동안 미사일 도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청와대는 이날 처음으로 규탄성명을 냈다. 문 정권은 이로써 대북정책 실패를 스스로 자인했다. 돌이켜보면 평화를 구걸하는 굴욕적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잘못 꿴 단추였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약육강식이며 역사는 반복된다. 유사시 국가를 지키는 것은 오로지 자국민이다. 로마시대 한 병법가의 조언대로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우크라이나처럼 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고, 휴전선 너머 김정은 독재세습정권이 국가전복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국 당국은 "전쟁도 제재도 반대한다"는 모호한 입장으로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한편 북한 외무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나토의 군사를 러시아 코앞에까지 확대하려는 미국의 반러시아 대결정책에 기인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문정인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를 비롯한 일부 인사들이 북한 외무성 성명과 궤를 같이하는 발언을 공공연히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해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코미디언 출신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미숙한 외교가 전쟁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권의 신북방정책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경제협력 체제를 무력화하고 외교노선을 친북·친중 정책으로 변경하는 것이었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를 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활발했던 남북 간 민간교류는 이명박 정부가 망쳤고, 박근혜 정부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에게 지급되는 달러가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고 간주하고 교류를 전면중단했다. 개성공단 폐쇄는 결국 군사적 긴장과 기업에 피해만 입혔을 뿐이었다. 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의 문제이고 남북교류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다. 국민의힘 당은 한미 군사동맹에 집착하여 사드를 끌어들여 한반도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시각은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어 결과를 원인으로 원인을 결과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남북관계가 경색된 원인을 돌아보거나 사고(思考)하지 않았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장렬히 전사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을 모른 척했다.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해 기진맥진한 대한민국 해수부 공무원을 총살하고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운, 문명국에서 상상도 못할 반인륜적 범죄를 비판하지 않았다. 또 8·18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우크라이나전쟁은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은 채 적대시정책을 계속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은 그 궤가 같다. 그것은 맹목적 반미주의로, 자유민주주의 확산을 경계하는 북·중·러의 정책이다. 남한 내에서 그 나라들과 같은 주장을 하는 인사들을 보면 어떤 지령에 의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다. 그게 침공의 이유가 된다고 여긴다면 그들은 열린사회의 적들이며 독재자 푸틴과 김정은, 시진핑의 추종세력이다. 우크라이나는 한국, 미국, 프랑스, 대만처럼 자유민주주의세계의 일부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전철을 밟을 수도, 밟아서도 안 된다. 정당 설립의 자유가 있는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열린사회의 적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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