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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論의 글자조합이 처음 출현한 것은 3세기(위진남북조)경이지만,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오늘날 같은 의미의 명사가 됐다. 그 이전 ‘言論’은 글자그대로, 동사(말하고 논하다)였다.

‘저널리스트=언론인’이니, ‘저널리즘=언론’일까? 예상과 달리, ‘言論 겐론’은 ‘스피치Speech’의 번역어로 자리잡은 일종의 ‘신조어’였다. ‘言’은 입(口)+혀(舌)의 상형에서 온 글자, ‘論’(言+侖조리·질서 륜)은 말을 조리 있게 구성하는 행위·결과다. 나아가 근대어로서의 ‘言論’엔 ‘공적인 발언’이라는 발상이 담겼다. 20세기 전반 일본유학파 지식인들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와 해방 후 널리 쓰이게 됐다.

‘프리덤 오브 스피치Freedom of Speech’가 ‘言論之自由겐론노지유’로 옮겨지면서 ‘言論 ’이 새롭게 태어났다면, ‘Speech’를 ‘연설(演說 엔제쯔)’로 번역하는 흐름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근대 서구언어와 접촉하며 자기들 모어에 깊이 절망했고, 의식주 관련의 일상적 대화를 넘어 공적영역에서 ‘조리있고 권위있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갈구했다(1870년대 영어공용화론의 배경). 수십년만에 그 꿈이 그럭저럭 이뤄진 게 20세기 초였다. 그럭저럭 연설은 물론 문학·학술이 가능한 일본어가 탄생한 것이다. 그 과정이 일본어의 근대였고 ‘언론’은 그 매개이자 방법론이었던 셈이다.

‘언론의 자유’ ‘언론활동’ ‘언론탄압’ 등등 ‘언론’이 들어가면 모두 묵직한 어휘가 된다. 일상어 ‘Speech(말·발언)’가 ‘言論’이라는 비일상적인 개념어로 번역됐다는 게 흥미롭다. ‘말하는 자유’ 대신 ‘언론의 자유’라는 한자어로 옮겨진 것은, ‘Freedom of Speech’가 당시 거창한 신문물이었기 때문이다.

‘자유’ ‘개인’ ‘사회’ 등등 무수한 사례처럼 ‘言論’이라는 단어의 성립·유통 역시 드라마틱했다. 익명다수의 독자(근대적 중산층)를 겨냥한 활자매체가 세상의 중심, 여론형성의 플랫폼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었다. 조만간 국가권력과 대결·갈등하면서 ‘언론탄압’이 발생하고, 자연히 ‘언론자유’가 절실한 화두로 떠오른다.

일본에서 건너 온 ‘言論’이지만, 언론의 정치적 역할은 한국현대사에서 더 강렬하게 나타났다. 식자율과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산업화시대, 언론은 절정을 맞는다. 다수의 독자와 그들을 계몽하는 입장의 지식인 집단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게 학자(교사)와 기자지만 대중적 영향력으론 ‘기자’가 으뜸이다.

‘신문에 (이렇게) 났다’ 이 한마디로 대부분의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시대일 때, 언론(인)은 공신력 그 자체다. 미디어 환경의 획기적 변화 등 문명사적 대전환 속에서, 언론은 스스로의 존재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분야의 하나가 됐다.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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