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대학에 간 그들··· 눈 속엔 항상 별이 반짝였다
 바라던 대학에 간 그들··· 눈 속엔 항상 별이 반짝였다
  • 최성재
  • 승인 2018.04.1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스로 성취하겠다는 의지가 성공의 첫걸음이다. 이 의지가 누구도 말릴 수 없는(irresistible) 열정이 될 때, 성공의 마지막 걸음이 축지법 쓰듯 성큼 다가온다.]

20XX년, 관악고. 나는 점심 식사 후 이도 안 닦고 곧장, 겸사겸사 교직원 식당 바로 위, 체육관에 들렀다. 멀리 저쪽에서는 선생님들이 배드민턴 라켓을 경쾌하고 휘두르고 있었고, 코앞의 이쪽에서는 태권도부 학생들이 삼삼오오 슬슬 스트레칭하고 있었고, 저만치 한쪽에서는 그새 준비운동을 마쳤는지 한 학생이 힘차게 발을 쭉쭉 뻗치고 있었다.

마침 태권도부 코치가 입구에 서 있었다. 막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는 태권도 선수들이 우렁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아, 우리 담임선생님도 계셨네요!”

나는 그들에게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코치에게 다가가 평소에 입이 근질근질하던 바를 꺼냈다.

“코치님,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태권도부 학생들은 여느 학생들과 달리 평소에도 함께 운동하고 합숙 훈련도 함께하는데, 실력은 왜 그렇게 들쭉날쭉합니까?”

“그럴 수밖에요!”

“.....? .....?”

“무엇보다 자세가 다릅니다. 똑같이 가르쳐 줘도 될 성 부른 아이들은 절 쏘아 보듯 두 눈을 날카롭게 반짝거리며 너무도 진지하게 듣습니다. 제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연습에 들어가서, 머리의 기억을 몸의 기억으로 바꿉니다.

개별적으로 잘못을 지적하면 조금도 고까워하지 않고 즉시 알아듣고 말로 또는 표정으로 감사를 표시하고는 바로 시정하거나 시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조용히 찾아와서 질문도 하고요. 저기, 선명이 보세요. 벌써 연습을 시작했잖아요. 아무나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아니지요.”

아하, 식곤증이 싹 달아났다.

“아, 공부나 매한가지네요! 그런데 코치님은 어떻게 즉석에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덕분에 오늘 한 수 아니, 두 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 코치나 세계대회 우승자를 배출하는 게 아니네요, 하하.”

불현듯 신목고에서 겪은 일이 떠올라, 히죽히죽 웃으며 나는 코치와 학생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학력고사 마지막 학번이 될 3학년 남학생반, 한창 수업하는데 갑자기 저 뒤에서 대여섯 명이 우르르, 후다닥, 헐레벌떡 교탁 바로 앞까지 달음박질쳐 왔다.

순간 나는 짜증이 확 치밀었다.

“야, 너희들은 왜! 한창 선생님이 설명하는데 앞으로 뛰쳐나오고 그러냐? 이것들을 그냥 확!”

“아, 예, 선생님, 글씨가 잘 안 보여 필기하려고요. 음, 저,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오, 그래?”

그날 달리기 시합과 말하기 대회에서 2관왕을 석권한 학생은 그해 서울공대에 합격했다.

하긴 관악고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고3이라도 특히 교과서를 가르칠 때는 진도가 급하지 않으면, 한 문장을 떼어내서 길게 설명하곤 했다.

“자, 지금부터 중1부터 대학원 2학년까지 가르쳐 주겠습니다.”

기본 개념에서 시작해서 예를 들어 차근차근 설명하면, 아무리 어려운 것도 보통 수준의 고3이면 다 알아들을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하면, 처음 중학 수준을 가르칠 때는 딴 짓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윽고 고1 수준에 들어가면 제법 듣다가 고2 수준만 되면 고개를 외로 꼬기 시작한다. 대학 수준에 이르면 아예 멀뚱멀뚱한다. 그딴 거 배워서 뭐해, 눈으로 그렇게 경고한다.

그런데 담임 반은 아니었지만, 유독 한 학생만은 그럴 때마다 너무도 진지하게 중1 수준에서부터 조금도 시답잖게 여기지 않고 청정지역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처럼 눈을 찬란하게 반짝였다. 삐뚤빼뚤하는 내 판서도 기가 막히게 받아 적었다. 간혹 날카로운 질문도 던져 가며! 지적 희열감이 그녀의 두 눈에서 찰랑찰랑했다.

대학생 수준에 이르면 오로지 그 학생만 귀를 쫑긋했다. 나는 단계마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제를 내곤 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면, 그 학생은 대학과정 문제도 조심스럽게 대답했는데, 70% 이상 답을 맞혔다.

그 예쁜이도 그해 서울대에 합격했다. 인문대였던 것 같다.

후에 등촌고에서도 그런 학생을 한 명 만났다. 울산에서 2학년 초에 전학 온 학생이어서, 1학년 때가 중상(中上) 정도라 2학년 때부터는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지만, 내신은 상대적으로 꽤나 불리했다. 모의고사는 발군이었고! 내가 가르치지는 않았다.

한번은 논술을 봐 달라고 해서 개별적으로 조금 지도해 준 적이 있는데, 상당한 수준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말 독해 능력이 탁월해서 첫 부분 요약 문제(précis)를 술술, 간결하게, 우아하게, 아름답게 서술했다.

수능 하루 전 날, 영어 한 문제가 도무지 이해 안 된다며, 내게 갖고 와서 불쑥 내밀었다.

“선생님, 왜, 이게 틀리지요? 관계대명사 계속적 용법에서는 접속사를 쓰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뭔가요? 그냥 외워야 하나요?”

“아, 그건 유미야. 기본 개념 문제란다. 이건 누가 냈는지 몰라도 아주 좋은 문제야. 출제자가 대단히 훌륭한 분이야. 관계대명사(relative pronoun)는 말 그대로 두 개념이 합쳐진 거란다.

관계는 접속사, 이을 接, 잇닿을 續, 곧 conjunction이란 말이고, 대명사는 말 그대로 대신할 대(代), 여기선 큰 대(大)가 아닌 건 알지? 그러니까 명사 대신 쓰인 거지.

만약 이 앞에 접속사를 쓴다고 해 보자. 그러면 접속사 두 개가 겹치게 되잖아. 그래서 원래대로 바꿀 때는 문맥에 따라, and it/ and he 또는 but it / but she 등이라고 하지.”

“유레카! 만약 접속사를 쓰면, and and it이 되는구나! 선생님, 감사합니당~”

그 다음날 수능에 바로 그 유형의 문제가 나왔고, 유미는 영어도 만점! 어여쁜 그 학생도 그해 서울대에 합격했다, 경제학부!

(2018. 4. 12.) 

csj@jayoo.co.kr

더 자유일보 일시 후원

“이 기사가 마음에 들면 후원해주세요”

  • ※ 자유결제는 최대 49만원까지 가능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새마루 2018-04-15 22:50:37
역시 아무 선생님이나 서울대 입학생들을 배출하는 게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