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연합
서울 아파트. /연합

정부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공개한 후 다음달 12일까지 소유자 의견을 접수한다. 대상은 1454만6958 가구에 달하는 전국의 아파트, 연립, 다세대 등이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3일 내놓은 ‘2022년 공동주택 공시가격안’에 따르면 올해 공시가격은 지난해 대비 17.22% 오른다. 지난해의 19.05%보다 1.83%포인트 줄었지만 2년 누적 상승률은 36.27%에 달한다.

공시가격은 보유세·건강보험료 등 67가지 행정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에 인상은 곧장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 5년 간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누적 상승률은 52.5% 에 달하고, 이 과정에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액은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상당수의 은퇴 세대는 건강보험료나 기초연금 혜택을 잃기도 했다.

증세 반발을 의식한 정부는 1세대 1주택자에 한해 올해 보유세 산정 때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하는 카드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1주택자의 재산세는 지난해 수준으로 동결된다. 하지만 고가 주택 소유자는 종부세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종부세에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지난해 95%에서 100%로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는 소득이 적은 60세 이상 1주택자를 대상으로 집을 처분할 때까지 종부세 납부를 미뤄주기로 했다. 또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공시가격 9억원 이하 1주택자에게는 재산세율 0.05%포인트 감면 혜택이 있다. 다주택자의 경우는 올해 인상된 공시가격 상승률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지난해보다 더한 보유세 폭탄을 맞을 공산이 크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이같은 행보에 대해 집값 급등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세금 폭탄 비난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말이 나온다. 올해 일시적으로 보유세가 동결돼도 부동산 세제 개편 등 별다른 조치가 없다면 내년에는 올해 공시가격 상승분을 포함한 공시가격이 반영되면서 보유세 부담이 급등할 수밖에 없다.

보유세를 산정하면서 해당 연도의 공시가격이 아닌 전년 공시가격을 적용한다는 점도 문제다. 조세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조세는 당해 연도의 소득과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일반 논리인데, 국민 반발을 우려해 과거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하는 유례없는 조치가 나온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원칙없이 정치논리에 휘둘린다는 방증이다.

보유세 폭등은 집값이 고공행진하는 가운데 정부가 무리하게 공시가격 현실화를 고집한 탓이 크다. 정부는 이번에도 시세의 60~70% 수준인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2030년 90%까지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그대로 적용했다.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을 높이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그대로 둔 상황에서는 사실상 세금 급등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변화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시가격 결정 주체인 국토교통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의 보완 가능성을 흘린 것이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부동산 세제 공약에 발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읽힌다.

실제 진현환 국토교통부 토지정책관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수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경직적으로 운영된 측면이 있다"며 "필요하다면 연구용역도 하고, 공청회도 거쳐 일정 부분은 보완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발표 당시 시장과 학계에서는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에 따른 세 부담 급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증세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안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으로 옳지 않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자 정책 변경 가능성을 시사하고 나선 것이다.

새 정부는 부동산 세제와 관련해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장기적으로 재산세와 종부세의 통합을 추진하고, 두 세금의 통합 전까지 종부세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을 95%로 동결해 1주택자의 세금을 문 정부 출범 이전 수준으로 인하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종부세를 지방교부세법에 따라 배분받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들의 반대도 넘어서야 한다.

윤 당선인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재수립 역시 공약으로 내놓은 상태다. 보유세 급등의 진원으로 꼽히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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