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국가정보기관, 어디로 가야하나

쿠데타 세력 美 CIA 모델로 만들어...당시 정권의 국정운영 뒷받침
신군부에선 ‘안전기획부’로 명칭 변경..국가 안보 수호 역할 아쉬워

국정원 청사. /위키피디아
국정원 청사. /위키피디아

국정원이 창설된 지 환갑이 되었다. 그런데도 모사드처럼 국민의 신뢰와 사랑받는 국가정보기관이 못되고, 정치에 휘말리고 청와대 뒤치다꺼리로 구설수에만 오르내리고 있다.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지난번에는 사람의 문제로 국가정보기관장 등을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조직의 문제를 한번 들여다보자.

4.19혁명 이후 민주화 물결이 봇물 터지듯 일어나면서 국가 전체가 총체적 혼란에 빠졌다. 군인들이 5.16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국가안보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인프라로 국가정보기관이 탄생하게 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미국 CIA를 모델로 해 국가정보기관을 만들고 두 가지 미션을 부여했다.

첫째 북한 위협을 책임지고 해결해 안보를 튼튼히 하라는 것, 둘째 자신들은 정치를 잘 모르니 정치를 잘하게 정보적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즉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에 대응해 대공업무를 철저히 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및 통치를 보좌하는 역할을 요구했던 것이다. 중앙정보부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이 두 가지 기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생태적 한계를 갖고 태어났다.

중앙정보부(1961-1979) 시절에는 대공업무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박정희 정부의 국민국가 건설(nation building)과 근대화라는 국정운영 방향에 맞춰 국정정보를 지원하고 통치를 보좌했다. 하지만 북한과 연계해 정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나 국정운영 방향에 방해가 되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국가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서 다소 일탈하기도 해 국민의 원성을 사거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즉 반공만 하면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권을 눌러도 좋다는 권위주의 정부의 충실한 도구로 기능했던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의 수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면서 조직은 존폐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엄혹한 주변 안보환경에 대처해야 하는데다 중앙정보부가 보유하고 있는 자료가 너무 방대했다. 전두환 등 신군부는 독재와 권위주의 이미지를 지우는 차원에서 명칭만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개칭하고 그대로 존속시켰다.

전두환 정권은 12.12사태 등으로 권력의 정당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핸디캡을 안고 있어, 안기부를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문민정부를 표방하고 안기부 개혁에 나섰던 김영삼 정부도 정권 차원의 안기부 활용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못했으며, 국가정보기관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시초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그 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좌파정부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우파정부가 서로 정권을 교대하면서, 교체기마다 과거 국내정치 개입의 흑역사를 들먹이며 정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폐청산 및 권력기관 개혁의 명분으로 서버를 열어 정보기관의 수장과 간부들 수십 명을 감옥으로 보냈다. 인류 정보 역사에도 없는 대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권력기관 개혁을 완성한다는 미명 하에 북한이 그토록 원하고 바라는 국가보안법 폐기 및 국정원 해체의 단초를 열었다. 국가보안법 적용 및 간첩수사를 사실상 무력화시켰으며, 국정원법에다 내부고발자 관련 조항을 넣고 정보활동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했다.

국가안보를 수호하는 전사가 아니라 행정공무원처럼 괜찮은 직장인으로 편안하게 살라는 것이었다. 북한으로부터의 안보위협도 그냥 눈 감고 있으라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총성없는 치열한 정보전쟁이 지속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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