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정말 실용 만능시대가 열린 것일까? 요즘 입 달린 사람이라면 실용을 즐겨 노래한다. 특히 대선주자들이 앞장섰다. 안철수의 경우 정초에 "자주·실용·평화에 기반한 책임 외교"를 외치더니 후보 단일화 직후엔 "미래 정부는 실용 정부"라고 운을 뗐다. 이재명도 그러했다. 그도 "나의 실용 외교노선만이 윤석열의 수구적 이념을 뛰어넘는다"고 호언했다. 요즘엔 윤석열 당선인이 실용이란 말의 바통을 들고 뛰는 중인데 인수위의 인선 키워드를 통합과 실용이란 딱 두 키워드로 정리했던 게 바로 그 경우다.

실용 만능의 꽃이 활짝 피어난 지금 우리 마음은 편치 않다. 근거 없는 말의 홍수가, 사상과 이념의 시대가 지나갔다고 하는 섣부른 착시 현상을 부르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가 모두 그쪽인데다가 더욱이 좌익세력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무장해제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일테면 지난 16대 총선(2000년), 17대 총선(2004년)에 출마했던 당시 허화평 의원은 이런 말을 귀 따갑게 들어야 했다. "지금이 대체 어느 때인데, 색깔이고 이념인가요? 그러다간 젊은이 표가 떨어집니다."

다 아시듯 그의 출마 지역은 포항이었다. 인구 50만에 평균 학력도 높아 서울의 축소판으로 불리던 고장이 그러했다. 이후에도 우린 좌익에 대한 경각심 대신 실용을 앞세워 스스로를 파괴해왔다. 그 악명 높은 사례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주의 노선인데, 놀라웠던 건 중도실용이란 모토가 그의 취향이고 정치철학은 아니었다는 대목이다. 즉 당시 한나라당에서 짜낸 전략이고, 그걸 이명박이 덜컥 받아들였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당시 여의도연구소 <2007년 집권전략 보고서>가 바로 이러했다.

"우리 사회의 중도-진보의 합이 3분의 2를 넘어서 보수만으로 과반의 지지가 불가능하다. 중도실용 노선을 선점해야 한다." 그래서 당시 당 서열 3위이던 사무총장도 이런 발언을 거침없이 했다. "이제 우린 보수란 표현을 아예 쓰지 말아야 한다." 당 강령에서 보수란 말이 완전히 빠져나간 건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였다. 안타깝다. 문재인 치하의 그 끔찍했던 좌익 세상을 겪고 난 지금에도 우린 마치 아무 것도 배운 바 없다는 듯이 다시 실용 만능의 노래를 열심히 부르는 중이다. 이게 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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