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월스트리트 거리 표지판. /AP=연합 자료사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앞 월스트리트 거리 표지판. /AP=연합 자료사진

미국 채권시장에서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 현상이 잇따르면서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성장이 좌초될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미 재무부는 다양한 형태의 국채를 발행해 연방정부의 예산자금을 조달한다. 23조 달러 규모의 미 국채에는 만기가 1개월부터 1년, 2년, 5년, 10년, 20년, 30년까지 있다. 통상 만기가 길수록 감내해야 하는 위험이 많아지기 때문에 금리가 높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면 오래 국채를 보유하는 것에 대한 기대 수익도 줄어든다. 이에 따라 10년물 국채 금리가 2년물 국채 금리보다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29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물 국채 금리가 2년물 국채 금리를 밑도는 상황이 벌어졌다. 둘 모두 2.39%대에서 잠시 역전이 일어났고, 이후에는 다시 4bp(1bp=0.01%포인트) 안팎으로 벌어진 채 거래됐다. 잠깐 동안의 일이지만 장단기 국채 금리 간 역전이 발생한 것이다. 10년물 국채 금리와 2년물 국채 금리의 역전은 미·중 무역갈등이 한창이던 지난 2019년 9월 이후 2년 6개월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미 연준의 긴축 가속 우려에 단기금리가 뛴 반면 우크라이나 사태 등 향후 경기둔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장기금리는 짓눌린 상태에서 금리 차가 좁혀지다 역전된 것이다. 앞서 28일에는 5년물 국채 금리와 30년물 국채 금리 격차가 -7bp(1bp=0.01%p)가 되면서 2006년 2월 이후 처음으로 금리가 역전돼 불안감을 키웠다.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높은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은 경기침체의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2000~2002년 닷컴 버블 붕괴나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10년물 국채 금리와 2년물 국채 금리가 역전된 뒤 불황이 찾아왔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대출 만기는 예금 만기보다 길다. 장기금리인 대출금리가 단기금리인 예금금리보다 높아 은행이 대출과 예금의 금리 차이를 통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대출을 실행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기 때문에 대출을 줄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경기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샌프란시스코 연준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1955년 이후 발생한 경기침체 이전에 항상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이 일어난 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실제 경기침체가 발생했다. 가장 최근 장단기 국채 금리가 역전된 것은 2019년이었고, 이듬해인 2020년 미국은 코로나19와 겹쳐 경기침체에 빠졌다.

미국 투자컨설팅업체 메들리글로벌자문의 거시전략가 벤 에몬스는 "역사적으로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 없이 경기침체가 일어난 적은 없었다"며 "그래서 이같은 현상은 미래의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지표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에몬스는 이어 "경기침체가 언제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며 "장단기 국채 금리의 역전이 일어난 후 경기침체가 발생하기까지 최대 2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정상 상태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한다. 하지만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 방지에 무게를 두고 있어 가파르게 기준금리를 올리는 등 긴축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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