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청소부 김씨
길을 쓸다가
간밤 떨어져내린 꽃잎 쓸다가
우두커니 서 있다
빗자루 세워두고, 빗자루처럼
제 몸에 화르르 꽃물 드는 줄도 모르고
불타는 연분홍에 취해서 취해서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나희덕(1966~ )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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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사는 친구에게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꽃 폈니?" "동백꽃 폈어, 놀러와." "다른 꽃은?" "벚나무도 꽃망울 맺혔지." 이런 통화를 한 게 며칠 전이니 지금쯤 벚꽃이 만발했겠다. 봄꽃은 시차를 두고 한반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온다. 그 시작은 언제나 동백꽃이다. 사실 동백(冬柏)은 그 이름처럼 겨울부터 피어 있었다.

시인은 ‘어느 봄날’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춘다. 매일 오가던 길이다. 그날은 ‘불타는 연분홍에 취해’버렸다. 그때 자신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청소부 김씨’를 발견한다. 동병상련(同病相憐) 대신 동춘상감(同春相感)이다. ‘김씨’는 시인이 임의로 작명했을 수도 있고, 오가며 서로 목례하며 지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핵심은 꽃잎 쓸어내는 일을 멈췄다는 것이다. ‘빗자루’를 물들인 ‘꽃물’은 ‘김씨’마저 물들인다.

시인은 ‘김씨’의 일이 쓸데없다 여긴다. 땅에 떨어진 꽃잎은 그냥 둬도 좋을 테지만 ‘김씨’에게 그건 일이다. ‘김씨’는 봄을 부지런히 쓸고 있지만 봄은 결코 쓸려나가지 않는다. ‘그가 쓸어낼 수 있는 건 바람보다도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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