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출간

'사후 발표' 뜻 받든 구술 기반 논픽션...김진언의 파란만장한 삶 복원
남로당입당→체포→월북→남파→체포·수감→전향·출소 과정 담아
억울한 사람들 '해원'은 필요하지만, 역사평가에 대한 열린 토론 절실

 
제주 해녀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구술에 기반한 논픽션<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교보문고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선창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가 나왔다. 제주 해녀 김진언(1911~1999)의 구술에 기반한 책이다.

"사후에 발표하라"는 김 할머니의 뜻이 있었다지만, 비로소 나름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는 판단 때문 아닐까. 제주4·3의 평가가 냉전시대와 정반대이며, 작년 말 생긴 특별법으로 보상금(1인 당 9000만원)도 지급된다.

억울한 사람들의 ‘해원(解怨)’은 필요하지만, 이 역사와 관련해 "잔혹한 국가폭력은 ‘애국’이라는 명분과 ‘빨갱이’라는 낙인으로 정당화되었다" 식의 기술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인지 입장을 정해야 한다. 동아시아·세계사적 지평에서 돌아보는 열린 토론공간과 학술연구가 절실하다.

제주4·3은 무고한 양민이 다수 희생된 우리 현대사 최대 비극의 하나다.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는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라 단순히 ‘국가폭력’으로 단정짓기도 어렵다는 게 이 사태의 진정한 비극일지 모른다. 이를 오로지 ‘국가폭력 ’으로만 보려면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가 돼야 한다.

양경인 작가는 1987년부터 5년간 끈질긴 채록·취재를 통해 제주 해녀 ‘여성운동가 김진언’의 삶을 복원해냈다. 1947년 남조선노동당(남로당)에 입당해 2년 후 체포→월북→남파→체포·수감 후 1974년 전향하기까지 공산주의자였던 김진언의 삶을 ‘빨갱이’ 대신 ‘여성운동가’로 기술하는 것은 온당해보인다.

그러나 "제주 4·3 때 여성해방과 조국통일을 위해 싸우다 시대의 희생자가 된 김진언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의 발자취"로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순간, 그녀들의 삶은 좌익의 입장으로 수렵될 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통일운동’은 실질적으로 북한체제로의 흡수를 의미한다.

열세 살에 물질을 시작한 김진언은 아침에 배를 타러 나갈 때면 늘 앞장서서 선창을 하던 당찬 해녀였다. "앉은뱅이도 일어서 춤춘다" 할 만큼 노래를 잘했다. 풍채가 좋고 궂은일 마다않는 성격 덕에 일찍부터 해녀들의 권리를 지키는 부녀회 총무를 맡았다. 해방을 맞자, ‘남녀평등’ ‘일부일처제’ ‘차별없는 무계급사회’라는 말에 이끌려 남조선노동당(남로당) 민주여성동맹(여맹) 활동에 뛰어든다.

4·3을 기점으로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고 그녀도 붙잡혀 고문을 당했다. 얼마 후 6·25 발발, 전세가 뒤집혀 퇴각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간다. "그곳엔 평등사회가 이뤄져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너무나 달랐다." 많은 인민이 굶어죽어도 군 상부에선 음식이 남아도는 것을 봤을 땐, 분노하며 당 간부에게 대들기도 했다. "우리 제주에선 이러지 않았다!"

"겉만 번드르르한 북한에 신물이 난" 김진언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믿음은 사라져가고 부모형제 원수를 갚고야 말겠다는 복수심만 커지는 것을 느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 당의 지령으로 남파됐다가 몇 달 만에 육군 특무대에 체포된다. 25년만에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게 1974년이었다.

"창피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아는 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귀향을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한 일 전체가 거짓말이 돼버렸으니까. 사람만 죽었지 뭐 하나 이룬 게 없으니까." "우리가 어리석어 그 고생을 한 걸까, 아직도 모르겠다." 생전 김진언의 토로다. 한편 "일부일처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활동했다는 김 할머니의 말 속엔 항상 자랑스러움과 후회가 교차했다"는 게 양 작가의 증언이다.

책 2부엔 김진언과 같은 시기 전라도에서 여맹활동 후 수감생활을 함께한 비전향 장기수 박선애·순애 자매와의 1990년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여성해방 없이 인간해방은 없다"고 믿었던 세 여성의 생애를 통해 해방전후 사회주의 여성운동사의 공백을 채워 넣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관통하며 살아낸 한 여성이 자신의 해방을 위해 분투했던 과정을 기록했다"는 작가의 자부는 인정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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