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집합해" 하니, 언론 사장들 "성은이 망극..."
대통령이 "집합해" 하니, 언론 사장들 "성은이 망극..."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8.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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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 청와대에 초청된 언론사 사장단이 오찬 간담회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이 자리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청와대에 초청된 언론사 사장단이 오찬 간담회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다. 몇몇 언론사 사장들은 흡사 청와대 보좌관들 처럼 공손히 손 모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자리에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얼씬도 할 수 없었다. 연합뉴스

[자유언론 미디어비평 그룹]

언론사 사장들이 청와대 출입기자가 되었나? 지난 19일 48개 언론사 대표들이 청와대에서 남북정상회담의 방향 등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설명을 듣고 그와 문답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지극히 비상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 기자를 제쳐두고 사장들을 불러 그런 일을 하는가. 대통령으로부터 국정 현안에 관한 발표를 듣고 질문을 하는 것은 출입기자의 고유 업무이다. 사장들이 그런 것도 모르는가.

기자들 제쳐두고 사장들에 정상회담 설명

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 같은 일이 있을까?

문 대통령은 1월 9일 신년 기자회견 이후 석 달이 넘도록 단 한 번도 기자들 앞에서 회견을 한 적이 없다.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중대 현안은 적어도 사장들을 불러야 된다고 생각했는가. 그렇다면 출입기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언론의 기본에 대한 무지이다. 기자와 사장의 할 일은 엄연히 구별되어 있다. 대통령은 기자들 앞에 나서야 정상이다.

아니면 사장이라야 대통령과 격이 맞는다고 생각했는가. 기자들은 대변인 등이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는가. 그 역시 무지이며, 지나친 권위주의이다.

신년기자회견을 하면서 청와대는 백악관 기자회견을 본떠 ‘미국식’으로 진행한다고 자랑했다. 그만큼 민주주의 형 기자회견이라는 것이다. 과연 미국 등 어느 민주주의 나라에서 대통령이 출입 기자를 제쳐두고 사장들을 불러 사실상의 기자회견을 하는가. 세계에서 한국에만 있는 일이다.

지금 정부의 핵심 관계자들은 모든 기자들이 언론사의 크기나 영향력과 상관없이 평등하다며 청와대 기자실을 개방한 장본인들이 아닌가. 전국에 무수한 언론사가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48개사를 선정했는가. 그들만이 대표성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설사 사장들이 자율적으로 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온당하고 적절한 일이 아니다. 앞으로 청와대 기자실에 48개사 기자들만 출입케 할 것인가. 새로운 필요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말과 행동을 바꾸는 집권세력의 이중성이 후안무치하다.

靑으로 우르르 몰려간 사장들

언론의 독립성 스스로 저버려

문 대통령은 18년 만에 똑 같은 행사를 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6월 19일 48개 언론사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저녁을 함께 한 뒤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한 달반 뒤 사장들 대부분이 북한을 방문했다. 당시 박권상 KBS 사장, 최학래 한겨레신문 사장, 장명수 한국일보 사장 등은 평양에서 김정일 등과 만나 술자리까지 함께 해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우선, 언론사 사장들이 집단으로 청와대에 간 것은 언론의 독립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행위였다. 언론은 기자들이 매체를 통해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비판하는 존재이다. 사장들이 한꺼번에 대통령의 대접을 받는 것은 정부의 노골적 언론 통제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것이었다.

더욱이 일부 사장들은 평양에서 김정일에게 “참 인간”이라는 등 아부 발언까지 해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평소 칼럼 등을 통해 독재와 권위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던 이들이 우르르 북한으로 몰려가 극진한 접대를 받고 희대의 독재자와 저녁을 하는 것은 이중적 행태가 아닐 수 없었다.

언론사 사장은 권력과 철저히 거리를 두어야하는데...

언론사 사장들은 일반 기업의 사장들과는 다른 존재이다. 정부가 특별한 대우를 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경우이든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과 거리를 두고 처신해야 하는, 독립성을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언론계에 전해지는 일화가 언론사 사장과 기자가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

어느 장관이 자기 부처의 중대 문제를 모 기자가 취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다급한 장관은 바로 기자가 속한 언론사 사장을 찾아갔다. 평소 친분을 믿고 보도를 막기 위해서였다. 부탁을 받은 언론사 사장은 “저는 취재에 관해서는 잘 모릅니다. 출입 기자에게 직접 말씀해 보시죠”라며 장관을 그대로 돌려 세웠다고 한다.

이 보다 한참 뒤의 일. 곤란한 취재에 직면한 어느 장관이 언론사 사장을 방문해 사정을 했다. 그러자 그 사장은 바로 편집국장을 사장실로 불러 올렸다. 그는 장관을 앞에 두고 편집국장에게 “잘 처리를 하라”고 지시했다.

실화인지 아니면 과장되었거나 지어낸 얘기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미심장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언론을 대표하는 것은 사장이 아니고 기자다

취재와 기사 쓰기는 오롯이 기자의 몫이다. 나아가 어떤 출입처든 언론사를 대표하는 사람은 사장이 아니고 출입기자이다. 장관이든 누구든 기사에 관한한 상대는 사장이 아니고 출입기자이다. 기사를 써 달라고 하던, 빼 달라고 하던 기자를 먼저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기사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기자가 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기자의 독립성이다. 언론의 생명인 객관성과 공정성은 바로 기자의 독립성에서 비롯된다. 먼저 기자가 자신만의 독단적 이념과 철학으로부터의 독립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사나 사장의 전횡으로부터 독립이 이뤄져야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으로부터 독립이 되는 것이다. 사장 말 한마디에 기자가 공 들인 기사가 훅 날아가 버린다면 기자가 있을 필요가 없다. 그저 부처의 보도 자료만 베끼면 그만이다.

대통령과 밥 먹는 게 '완장'이 되는 우스운 나라

앞의 사장은 기자와 자신의 할 일을 구별했다. 기자의 체면과 위신을 존중했다. 뒤의 사장은 반대였다. 자신이 내 보낸 기자의 책무를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기자는 물론 편집국장까지 우습게 만들었다. 장관이나 부처 간부들이 사장에게 얘기하면 해결되는 것을 보고서 출입 기자에게 제대로 취재 협조를 하겠는가. 그 기자의 취재를 신경 쓰겠는가. 사장은 결국 자신의 기자가 무너지고 나아가 자기 회사가 무너진다는 것을 몰랐다.

대통령이 부른다고 마구 달려가는 사장들은 뒤의 사장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고, 기자를 존중하지 않는 그들의 행태가 권력의 무시와 천대를 자초했다. 그렇게 한국 언론은 스스로를 침몰시켰다. 언론계의 양식 있는 인사들은 보도자료 없이는 기자 노릇을 할 수 없는, 공정한 비판 정신을 저버리는 기자들을 보면서 기자들의 체면과 위신을 존중하는 사장들이 아예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개탄한다. 그렇게 왜곡된 생각을 가진 언론사 경영진 때문에 한국 언론에 저널리즘의 가치와 정신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비판한다.

정말 바보인가? 대통령과 찍은 사진 SNS에 ‘자랑질’까지

왜 언론사 사장들이 청와대 출입기자 노릇을 자처하는가? 출입기자들과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며 초대를 거부하지 못했는가. 어떤 사장은 SNS에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까지 올리며 무슨 건의를 했노라고 자랑 질까지 했다. 청와대에서 밥 얻은 먹은 것이 그렇게 자부심 솟는 일인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대통령들이 사장은 물론 주필 또는 편집·보도 국장을 떼로 불러 식사 대접하는 일이 한국 언론의 일상사가 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오간 얘기가 대서특필되는 웃지 못 할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 민주국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희한한 한국적 언론 풍토를 바로 잡는 것은 바로 언론인들의 각성이다. 그 출발은 사장들이 대통령의 식사 대접에 연연하지 않고 김정은과 남북정상회담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진실을 보도하도록 하는 것이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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