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초기 北점령지마다 '인민위원회' 치밀한 조직
6.25 초기 北점령지마다 '인민위원회' 치밀한 조직
  • 유진
  • 승인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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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조승우(오른쪽)가 연기한 김원봉(왼쪽). 김원봉은 원래 조선의열단을 창단하는 등 임시정부에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한 '투사'로 이름을 높였으나, 광복 후 1948년 북한으로 전향함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갈린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오른쪽)가 연기한 김원봉(왼쪽). 김원봉은 원래 조선의열단을 창단하는 등 임시정부에서 치열한 독립운동을 한 '투사'로 이름을 높였다. 그는 광복 후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으나 이후 김일성에 의해 숙청 당했다.
<17> 김일성이 파견한 정치공작대가 당·정·사회단체 만들어

북한은 이 같은 조치와 함께 각 지역에 파견되는 정치공작대가 점령지역에서 수행할 임무와 지침도 하달했다. 북한은 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군사위원장 김일성 명의로 발표한 "우리 조국 수도 서울해방에 대하여"라는 방송 연설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결정 "해방지역에서의 당ㆍ정ㆍ사회단체의 재건과 토지개혁 및 인민군 원호 사업을 신속히 조직 진행할데 대하여"를 통해 점령지역에 파견된 정치공작대에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고 그것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하였다.

6.25 전쟁 중 북이 점령한 지역에서 공개적인 인민재판이 열리고 있다.
6.25 전쟁 중 북이 점령한 지역에서 공개적인 인민재판이 열리고 있다.

점령지역에 파견된 정치공작대들은 무엇보다 '해방지역'에 당ㆍ정ㆍ사회단체 조직들을 재건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이 가운데 정치공작대들이 점령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추진한 것은 각급 단위의 최고 지도기관인 노동당 조직을 재건하는 공작이었다.

노동당 조직 재건은 중앙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승엽의 서울지도부가 이미 만들어졌기 때문에 도→시→군→면 단위로 내려가면서 각급 당 위원회를 재건하는 하향식 방식으로 조직하도록 하였다. 노동당 조직 재건에 뒤이어 인민정권기관인 임시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 조직들을 다시 만드는 작업을 추진했다.

◇도→시→군→면 단위로 하향식 당위원회

점령지역의 당ㆍ정ㆍ사회단체 조직 재건은 북한에서 파견한 남로당 및 북로당 출신의 정치공작대원들이 중심이 되어 형무소에서 탈출한 남로당 간부 및 좌익분자들,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활동을 했던 유격대 출신 간부들, 피신하거나 잠복했던 남로당 간부 및 당원들을 적절히 배합해 조직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었다.

소련이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내세워 수립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소속위원들.
소련이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내세워 수립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소속위원들.

그리고 당ㆍ정ㆍ사회단체 조직 간부를 임명할 때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당 지역출신의 남로당 간부를 책임자에 앉히고 북로당 출신 간부를 부책임자에 임명하도록 하였다. 특히 점령지역 각 도당위원장 및 부위원장은 북한 노동당 중앙원회에서 임명했다. 당시 임명되었던 남한지역의 각 도당위원장 및 부위원장들은 다음과 같다.

서 울 시 당위원장 김응빈(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한창근(노동당 중앙위 조직부 책임지도원)

경 기 도 당위원장 박광희(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김광익(중앙당 조직부 책임지도원)

충청북도 당위원장 이성경(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정태수(중앙당 조직부 책임지도원)

충청남도 당위원장 박우현(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유영기(황해도당 조직부장)

전라북도 당위원장 방순표(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조병하(함북도당 조직부장)

전라남도 당위원장 박영발(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김향선(평북도당 조직부장)

경상북도 당위원장 박종근(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이영섭(함남도당 조직부장)

경상남도 당위원장 남경우(소련 고급당학교)

부위원장 김삼홍(평남도당 조직부장)

이와 같이 북한은 인민군이 점령한 남한지역의 각도 도당위원장에 소련 고급당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있던 남로당 출신 간부들을 소환해 임명하였다. 이들이 남한 사정을 잘 알고 있고, 남한 출신이기 때문에 남한주민들의 신뢰도 쉽게 얻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지도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부위원장에는 북한에서 중앙당 조직부 책임지도원이나 도당 조직부장 등의 당 조직 지도 경험이 풍부한 책임간부들을 선발하여 임명하였다.

또 점령지역에서 당 및 정권기관, 사회단체들을 급속하게 재건하면서 발생하는 간부부족 현상을 해결하려고 남한지역 각 도에 도당학교를 설치하고 도당학교들에는 각각 100여명의 당원들을 선발, 입학시켜 1개월간의 단기교육을 한 다음 간부로 임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로당 간부 및 유격대원들을 양성하던 강동정치학원은 전쟁이 터지면서 해체했기 때문에 일반 간부를 양성하던 평양의 중앙당학교나 내각 간부학교에 남로당 출신 간부들을 입학시켜 중간급 간부로 양성하여 파견하였다.

평양연석회의에 입장하는 김일성(오른쪽 앞)과 박헌영, 세번째가 김원봉이다.
평양연석회의에 입장하는 김일성(오른쪽 앞)과 박헌영, 세번째가 김원봉이다.

◇인민위원회도 면과 리 단위까지 갖춰

이러한 준비 아래 노동당 재건 작업에 들어갔는데, 당 세포나 초급당위원회 등 노동당의 기층조직 재건은 기존에 남로당에 입당해 활동했던 남로당원들을 재심사해 등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조직된 기층조직들을 상급당 조직인 군ㆍ시ㆍ도당 위원회가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방식으로 노동당을 재건했다.

노동당 조직 재건과 함께 각급 인민정권기관 즉 인민위원회를 만드는 공작도 추진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북한군이 강점한 지역에 들어가 도ㆍ시ㆍ군ㆍ면ㆍ리(里)까지의 각 단위에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다음 단계에서 임시인민위원회 주도로 선거를 실시해 정식 인민위원회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인민정권기관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각급 인민위원회가 지역의 북한군 원호, 의용군 초모, 주민초본 발행, 지방질서 유지 등 행정전반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북한군 점령지역이 남쪽으로 확대되자 1950년 7월 1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를 열고 점령지역의 합법적인 인민정권기관 수립을 위한 선거 실시 문제를 토의한 후 "해방지역에서 지방정권 기관인 인민위원회 수립을 위한 선거를 실시할데 대하여" 제하로 된 정령을 발표해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정령의 주요 내용은 도를 제외한 시ㆍ군ㆍ면ㆍ리 단위에서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할 것과 구체적인 선거일자는 도 임시인민위원회가 결정하고 선거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북조선 인민위원선거 축하행진
북조선 인민위원선거 축하행진

◇중앙선거지도위원장 김원봉이 총지휘

이와 함께 점령지역에서의 인민위원회 선거를 총괄 감독하는 기관인 중앙선거지도위원회도 만들었다. 중앙선거지도위원회 책임자는 내각 국가검열상을 역임하고 있던 김원봉을 임명했으며 부책임자는 정순명ㆍ김응기를 앉혔다. 아울러 이종갑ㆍ현훈ㆍ정칠성ㆍ이황기ㆍ방학세 등을 중앙선거지도위원회 성원으로 임명하였으며 각 도ㆍ시ㆍ군ㆍ면 단위까지 선거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준비 아래 7월 15일 ~ 9월 13일까지 50일간 점령지역에서 각급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당시 전투가 진행되고 있던 경상북도 8개 군, 경상남도 9개 군, 제주도를 제외한 108개 군, 1,186개 면 등에서 선거가 실시되었고 그 결과 점령지역에 각급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당시 각급 인민위원회 위원장에는 북한에서 정치공작대로 파견된 해당지역 출신의 남로당 간부가 뽑혔고 부위원장 또는 서기장에는 북로당 출신 정치공작대 간부가 선출되었다.

한편, 점령지역에서의 사법검찰기관, 내무기관 및 사회단체들을 조직하는 작업도 인민위원회 선거와 함께 정치공작대로 파견한 간부들이 차곡차곡 추진했다.

그리고 북한군 강점지역이 남쪽으로 확대되자 '서울지도부' 일부 인원들을 대전에 내려 보내 '대전지도부'를 구성하도록 하고 새로 점령한 지역에서의 당ㆍ정ㆍ사회단체 조직 재건 공작을 장악 지도하도록 했다.

y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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