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며칠 전, 내가 재학 중인 대학교 커뮤니티에 ‘대학 왜 온 지 모르겠다’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군대 간 20학번 남학생이 익명으로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다.

"내가 입학할 때는 코로나 터져서 밖에 나가면 XXXX 소리 들었다. 사스나 에볼라처럼 곧 끝나겠지, 대면하면 내가 꿈꾸던 대학생활 할 수 있겠지 견디다가 600만원짜리 인강 들으면서 1년 반이 갔다. 그리고 군대를 왔다. 나보다 학번 높은 선임들은 대학교 1, 2학년이 진짜 인생의 엑기스라고 말한다.(중략)그런데 나는 전역하고 복학하면 23학번과 학교 다니는 나이많고 불편한 복학생 아저씨다. 나는 선배인데 아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과 동기 없고 선후배 없고 학교 지리, 건물, 셔틀, 학식, 도서관 뭐 그딴 거 아무것도 모른다. ot, mt, 미팅, 소개팅, 동기들과의 여행...할 생각도 못했다. 복학 후 내 앞에 남은 건 취업 또는 대학원 진학이다.(중략) 20학번 남자는 저주받은 거 같다.(하략)"

이 글은 많은 학우들의 공감을 얻었고 다양한 댓글이 달렸다. ‘이왕 대학생활 박살난 거 칼졸업하고 자기 진로 찾아가면 됨’ ‘나는 3, 4학년이 제일 재미있었는데 힘내’‘ 솔직히 3, 4학년이 노력해서 재미있고 다양하게 산다는 건 부모님 등골 빼먹거나 취준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무나 그렇게 못삼’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자’ ‘ㅇㄱㄹㅇ’(이거레알) 등등.

다분히 현실적이고 공감도 가는 글이지만, 잠시 생각을 돌려보자.

17세기 세르반테스가 지은 ‘돈키호테’의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라는 노인은 중세의 기사 모험담에 매료된다. 스스로를 기사라 칭하며 돈키호테라 이름 붙이고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그러던 중 멀리서 풍차를 보고 거인으로 착각해 달려들었다가 풍차 날개에 부딪혀 나가떨어진다. 더할 나위 없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으로, 왜 그런 어이없는 이상에 빠지게 되었냐고 묻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돈키호테 같은 기행도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 풍요를 포함한 모든 가치는 정해진 게 아니라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이유를 ‘깨어있기 위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체계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지식을 쌓고, 더 확장된 사고의 틀 안에서 세상에 대해 깨우치고 질문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물론 절대적 정답은 아니다. 대학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후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물음의 출발점이 된다면, 우리는 모두 자신에게 영웅 ‘돈키호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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