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단 예고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연합
공사 중단 예고된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 /연합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벌어진 둔촌주공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업단의 갈등이 결국 공사 중단으로 이어졌다. 공사 진행률이 52%에 달하는 상황에서 대단지의 재건축 공사가 중단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조합은 시공사 교체, 시공사업단은 유치권 행사에 나섰지만 결국 모두가 지는 게임이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조합과 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등 시공사업단의 협상은 이미 지난달을 마지막으로 끊긴 상황이다. 서울시는 양측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중재자 3명을 파견, 10여 차례 중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중재 역할마저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시공사업단은 오는 15일 0시를 기해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시킬 계획이다. 또한 유치권을 즉시 행사해 공사 현장 전체를 봉쇄할 예정이다. 유치권은 공사대금이나 보증금 등 채권을 변재받을 때까지 해당 부동산을 점유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둔촌주공 재건축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의 노후화된 아파트 5930가구를 헐고 지상 최고 35층, 85개 동, 1만2032가구 규모의 신축 아파트 ‘올림픽파크 포레온’으로 다시 짓는 사업이다. 기존 최대 재건축 사업이던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의 9510가구를 훌쩍 넘어서는 것으로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린다. 특히 일반분양 물량이 4786가구에 달해 수십만명의 예비 청약자 역시 눈독을 들이고 있다.

조합과 시공사업단 갈등의 핵심은 6000억원 규모의 공사비 증액이다. 양측은 지난 2016년 2조6000억원에 계약을 했지만 2020년 설계안을 변경하면서 3조2000억원으로 늘어났다. 기존 설계보다 가구 수와 상가 건물이 추가되고, 자재 역시 고급화하기로 한 것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조합은 시공사업단이 전임 조합과 맺은 증액 계약은 절차적으로 부당하다며 무효소송에 나섰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지난 2년 간 공사비를 한푼도 못 받은 상황에서 조합이 계약서상 공사비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공사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재건축 사업은 착공과 동시에 일반분양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고, 부족한 부분은 조합원들이 내는 분담금으로 충당한다. 하지만 둔촌주공은 다음달로 예정된 일반분양도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둔촌주공은 철거 직후인 2020년 일반분양에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3.3㎡당 2978만원으로 통보하면서 사업이 지연됐다. 당시 조합에선 3.3㎡당 3550만원의 분양가를 주장했는데, 이로 인해 조합원 간 갈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정부안을 받아들여 빨리 사업을 진행하자는 조합원과 후분양을 노리자는 조합원이 대립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둔촌주공은 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분쟁을 겪어 건설업계에서는 ‘재건축 분쟁 백과사전’이라는 말이 나왔다. 석면 처리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둔촌주공은 지난 2019년 철거를 진행하던 중 1급 발암물질인 석면 철거 작업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나섰고, 이 과정에서 3~6개월 예정됐던 철거 기간은 1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특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조합 집행부가 바뀌면서 책임 소재도 불명확해졌다

시공사업단은 둔촌주공에 투입한 공사비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주비 등 금융비용 이자 1500억원, 조합 사업비 7000억원 등을 합치면 조합이 시공사업단에 납부해야 하는 비용은 2조5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합은 일반분양 물량을 모두 분양하면 변제에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계약해지 후 곧바로 변제를 하지 못할 경우 손해배상 소송 등 각종 비용이 더 불어날 수 있다. 더구나 시공사를 교체하면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야 하는데, 정비업계에서는 이미 공사가 진행된 현장에는 다른 시공사가 들어오지 않는 관행이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둔촌주공의 분양가는 아직 미정이다. 최근 분양가 산정에 기초자료로 쓰이는 택지비만 ㎡당 1864만원으로 확정됐다. 이 같은 택지비를 전제로 하면 3.3㎡당 3500만~4000만원의 분양가가 산정될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하지만 일반분양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공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특히 미니 신도시급 단지가 공사 중단에 직면하면서 강남권 주택공급에도 대대적인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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