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리 베레즈니, 교회 자원봉사팀서 시민들 구하다 숨져
기독교 집안 출신의 하나님 말씀 항상 귀에 달고 살던 청년
“설교자의 말 듣고 그대로 실천한 순교자의 좋은 본보기”

우크라이나의 ‘IT 순교자’ 아나톨리 베레즈니. /순교자의소리 제공
우크라이나의 ‘IT 순교자’ 아나톨리 베레즈니. /순교자의소리 제공

“아나톨리 형제를 순교자라고 칭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다가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형제를 아는 지인들은 아나톨리 형제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의도적인 결단을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아나톨리 형제는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깨닫게 해주셨는데도 그 길을 기꺼이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순교자라고 칭한 것입니다.”

12일 현숙 폴리 순교자의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3월 6일 우쿠라이나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 대피 중이던 한 여성과 두 아이를 돕다가 뒤에서 날아온 러시아군의 박격포에 맞아 숨을 거둔 26세의 청년 아나톨리 베레즈니(Anatoliy Berezhny)의 사연을 소개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사람들은 대부분 순교자라고 하면 목사나 선교사를 떠올린다”며 “하지만 아나톨리 형제는 컴퓨터 업무 지원 전문가이자 현지 정보통신 회사의 시스템 관리자였다. 그는 ‘이르핀 성서교회’에서 장비를 담당한 적도 있고 미디어 사역 단체를 섬긴 적도 있지만 안수받은 성직자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순교자의소리가 순교자로 인정한 아나톨리 형제의 장례식은 지난 3월 12일 우크라이나 크레멘추크 ‘생명의 샘 교회’에서 거행됐다.

◇러시아와 교전 가까워지자 아내를 안전지역 데려다 놓고 자원봉사팀과 시민들 목숨 구해

지난 3월 12일에 거행된 장례식에서 아나톨리 형제의 아내가 남편의 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지난 3월 12일에 거행된 장례식에서 아나톨리 형제의 아내가 남편의 관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순교자의소리

순교자의소리에 따르면 아나톨리와 그의 아내는 루한스크에서 가까운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이다. 이들은 1년 반 전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이르핀 지역으로 이주해 이르핀 성서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교회 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교전이 이르핀에 가까워지자 아나톨리는 아내를 우크라이나 서부에 있는 안전한 지역에 데려다 놓은 뒤, 자신은 교회에서 조직한 자원봉사팀에서 사역하기 위해 이르핀으로 다시 돌아갔다.

현숙 폴리 대표는 “그 자원봉사팀은 하루에 100명에서 200명의 시민을 대피시켰는데, 그 가운데 다수가 시 공무원들이 부탁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아나톨리의 회사 사장이 그를 추모하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의하면 아나톨리와 자원봉사자팀은 이틀 동안 400명 이상의 시민을 차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다.

현숙 폴리 대표는 “자원봉사팀에서 아나톨리 형제와 함께 사역한 친구 한 사람은 아나톨리 형제가 죽기 전날 자원봉사팀이 도로에서 장갑차 한 대와 마주쳤다고 말했다”며 “자원봉사팀은 급히 숲으로 방향을 틀었고 나무에 부딪히긴 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그 친구는 아나톨리가 그날 밤 너무 조용했다며, 아무래도 그날 밤에 그가 죽음이라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한 것 같다고 전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자원봉사팀은 다시 도시로 들어가 조금 더 많은 시민들을 대피시키기로 했다. 대피 중이던 시민들이 건너편에서 대기 중인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무너진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당시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날 아나톨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있던 여성을 도우러 갔다가 길을 건너던 일행과 함께 박격포에 맞아 버스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숨졌다.

◇다른사람 말 잘 들어주고 하나님 말씀 항상 듣던 청년...“실천적 순교자의 좋은 본보기”

우크라이나의 ‘IT 순교자’ 아나톨리 베레즈니의 생전 모습들. /순교자의소리
우크라이나의 ‘IT 순교자’ 아나톨리 베레즈니의 생전 모습들. /순교자의소리

현숙 폴리 대표는 “사람들은 종종 순교자를 담대한 설교자로 여기지만, 아나톨리 형제는 설교자의 말을 듣고 그대로 실천한 순교자의 좋은 본보기”라며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아내 다이애나는 남편이 평소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하기를 어려워했지만 수첩에 종종 기록했다며 ‘남편은 말주변은 없었지만 남의 말은 잘 들어주었어요’라고 말했다. 다이애나는 남편이 부활에 관하여 기록한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그 부분을 읽어보면 남편이 왜 목숨을 걸고 전쟁 지역에서 계속 사역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현숙 폴리 대표는 “또한 장례식 참석자 몇 명은 아나톨리 형제가 성경을 통해 주변 사람들의 멘토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고 전했다”며 “아나톨리 형제의 아내는 남편이 항상 헤드폰을 끼고 다니며 성경 말씀을 들었고, 그래서 그가 퇴근하면 한쪽 헤드폰을 빼앗아 자기 귀에 꼽고 하나님 말씀을 함께 듣곤 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아나톨리는 기독교 가정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1995년부터 2008년까지 루한스크 지역 몇몇 침례교회의 지도자들 중 한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례식에 참석한 아나톨리의 장인도 자신의 집안과 아나톨리의 집안이 오랜 세월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다며 “어떤 사람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녀를 보는 것이 부모의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저는 오늘, 진리 안에서 죽는 자녀를 보는 것이 부모의 큰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아나톨리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장면. /순교자의소리
아나톨리와 다이애나의 결혼식 장면. /순교자의소리

한편 순교자의소리는 ‘순교자 및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 기금에 들어온 헌금 250만원을 아나톨리의 아내에게 보냈다. 또한 지난달 마리우폴 지역에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음식과 보급품을 전해주는 사역을 하던 중 자신들의 자동차 근처에서 터진 수류탄 폭발로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기독교인의 홀로 남은 아내들에게도 헌금을 보낼 예정이다. 이 다섯 명의 성도는 순교 며칠 전 불이 난 집 지하실에서 한 남자를 구출하여 주님께 인도하기도 했다.

순교자의소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을 살다가 목숨을 잃은 우크라이나 기독교인의 가족들에게 ‘순교자 및 수감자 가정 지원 사역’ 기금에 들어온 헌금을 보내주는 사역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기독교인 긴급 구호 프로젝트’도 계속 진행 중이다. 이 사역에 동역하고자 하는 한국 교회나 성도는 아래 방법으로 참여 가능하다. 

웹사이트: www.vomkorea.com/donation (납부유형 ‘순교자 및 수감자가정 지원사역’ 선택)  
계좌이체: 국민은행 463501-01-243303 예금주: (사)순교자의 소리 (본인성명 옆 ‘우크라이나’ 혹은 ‘순교자’라고 기입. 그렇지 않으면 일반 후원금으로 사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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