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이른바 ‘BTS 병역특례법’을 추진한다고 밝히자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군복무 정책은 병력 부족에 따라 대체복무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법안은 기존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20대 청년(이대남)들은 억울함을 표하고 있다.

병역특례법 찬성론자들은 BTS로 인한 국가적 이익을 들어 군면제를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휴전상태이다. 이런 논리라면 20대 남성이라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미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처(Michael Walzer)는 사회부정의와 평등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왈처는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돈을 가진 사람이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봤다.

한 가지 영역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들이 그 이유만으로 다른 영역을 독점하고 기준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할 때, 우리는 부당함을 느낀다. 복지의 영역에는 필요에 따른 분배, 돈의 영역에는 자유교환에 따른 분배, 정치권력의 영역에는 토론과 민주주의에 따른 분배 기준을 적용하는 등 각 영역에 따라 다양한 정의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다원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며, 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사회부정의의 본질로 본 것이다. 왈처는 이러한 부정의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각 영역별로 고유하고 특수한 분배원칙을 지키는 복합평등을 주장했다.

‘BTS 병역특례법’ 논란도 마찬가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라고 해서 군면제 혜택을 받을 이유는 없다. 세계적 아티스트로서 성공한 것은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과 명예가 주어지는 것으로 충분하다. 병역의무의 기준이 침범받거나 훼손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일 군면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예술적 성공에 편파적인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셈이 된다.

사회에는 예술뿐만 아니라 사업·교육·정치·학문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각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사람 또한 존재한다. 예술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고 해서 차별적으로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할 까닭이 뭔가. 과연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이유로 군복무 영역의 기준을 훼손하는 것이 다원적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인가 묻고 싶다. 원칙을 뒤로 하고 포퓰리즘적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과거로 퇴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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