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영
정구영

트릴레마는 3가지 딜레마를 말한다. 세 가지 문제가 서로 얽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저성장, 고물가, 재정적자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하자. 이 경우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긴축정책을 완화하면 재정적자가 더욱 늘어나 국가신용이 떨어지고, 금융시장도 취약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으려 하면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 복잡해진 세상은 딜레마 이상의 분석 틀을 요구한다. 트릴레마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 이유다.

정부가 지난 5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2021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포함한 총세입은 524조2000억원이다. 같은 기간 총세출은 496조9000억원으로 27조3000억원의 결산잉여금이 발생했다. 결산잉여금에서 다음 회계연도 이월액 4조원을 제외한 세계잉여금은 일반회계 18조원, 특별회계 5조3000억원 등 모두 23조3000억원이다.

세계잉여금은 재정에서 1년 동안 필요한 비용을 다 지출하고 국고에 남은 잔액으로 다음 회계연도의 가용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공약한 50조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세계잉여금을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에서 지방교부세 및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채무 상환 등을 제외하면 3조3000억원만 활용이 가능하다. 특별회계 세계잉여금도 상황은 마찬가지. 올해 본예산에 이미 5000억원이 반영됐고, 지난 1차 추경 때 2조3000억원을 활용해 남은 것은 2조5000억원이다.

한국은행 결산잉여금도 동원할 수는 있다. 한국은행이 정부에 납부하는 결산잉여금은 5조4800억원으로 정부가 예상한 4조원보다 1조4800억원가량 더 늘었다. 이 초과분만큼 2차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활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은 7조2800억원 정도다. 윤 당선인이 제시한 추경 규모를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본예산의 지출 구조조정으로 모자란 재원을 충당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는 매년 10%의 재량지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데, 10조원 안팎에 머문다. 여기에서 수십조원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마른 수건 짜기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면서 2차 추경 규모가 30조원 수준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사실상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2196조4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14조7000억원 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2016년의 1433조1000억원과 비교하면 5년 새 763조3000억원이나 증가했다. 국가부채는 국가채무에 연금 충당 부채가 포함된 것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국가채무시계에 따르면 지난 5일 현재 국민 1인당 국가채무는 1945만원 수준이다. 적자국채가 대규모로 발행되면 2000만원 돌파는 시간문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윤 당선인의 공약 200여개를 이행하는데 266조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재정확보 측면에서 윤 당선인은 세수확대보다 대대적인 감세 공약을 제시했다. 부동산과 증시 등 자산시장도 가라앉은 상태여서 지난해 같은 초과세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높은 복지 수준, 낮은 조세 부담률, 건전한 국가부채가 동시에 성립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재정 트릴레마다.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무언가 하나는 포기하거나 희생해야 한다. 복지를 늘리는 만큼 증세하자고 국민을 설득하거나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수정할 수도 있다. 솔직한 리더십이 해법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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